한 사회 또는 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특정 주체의 선도적인 안목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쟁의 장에 속해 있는 조직일수록 남달리 보고 움직이는 일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다. 또한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조직의 경우도 구성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변화이슈를 설정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사업조직이자 운동조직의 성격을 지닌 신협은 비록 금융시장에서 위상이 높지는 않았지만 어느 조직 못지않게 선도적 안목을 가지고 사회변화에 대한 이슈를 견지해 왔다고 자부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협의 지상목표인 "복지사회 건설"의 주창이다.
이 모토는 새마을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1970년대에 제시되었다. 당시 신협의 위상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복지사회 건설은 너무 거창한 모토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주도의 산업경제가 오로지 노동자ㆍ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제일주의를 추구할 때 신협은 경제적 약자들이 더불어 잘사는 복지사회 건설을 주창하였다. 즉 신협은 주류경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국가의 시혜적 복지를 기대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생산적 복지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릿고개를 겨우 넘어왔던 시절에 작은 조직에 불과했던 신협이 복지사회 건설을 화두로 제시한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198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에는 일본이 겪어 왔다는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해 가는 징후마저 농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과 삶의 질의 강화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졌다. 복지문제를 등한시하는 정당은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복지사회 지향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최근 우리 사회에 협동조합 설립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몬드라곤을 찾고 있다. 몬드라곤을 협동조합의 미래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방증이다. 그런데 신협은 20년 전에 몬드라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몬드라곤 공동체의 실현가능성에 주목했다. 이 모델은 다종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설립되어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교환 및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지역사회와 그 주민들의 경제적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지역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면 어떠한 협동조합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협은 금융업을 주축으로 하여 다양한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복지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변화모델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 동안 신협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들의 금융소외를 해소하는 한편 여러 업종 분야에서 독과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금융외적 사업을 영위해 왔다. 비록 이러한 사업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본업에 충실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조직 안팎의 분위기 때문에 상당히 위축되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신협조직의 DNA로 남아 있다.
신협은 몬드라곤 공동체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신협은 몬드라곤의 외양을 찬탄하거나 그 모델을 답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신협은 몬드라곤 성공의 이면에 훌륭한 지도자가 존재했고, 그들만의 협동조합 원칙과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러한 보이지 않는 요인들 때문에 몬드라곤은 60년 동안 공동체를 꾸려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한국 신협의 성공요인이기도 한다.
60여년 동안 민간주도의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복지사회 건설을 도모해온 신협은 스페인의 몬드라곤그룹과 같은 협동조합공동체를 아시아권에서도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 연장선 위에서 신협은 앞으로 융ㆍ복합 협동조합 모델을 지향하고자 한다. 이 모델을 통해 신협은 직접 여러 종류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도 있고 기존의 협동조합들을 잘 선별하여 적극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협동조합 섹터 내에서 신협과 일반협동조합들이 상호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협의 경쟁력이 될 것이고, 신협의 사회경제적 존재이유를 밝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문철상 신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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