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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팝아트의 선구자 29주기

'성기 절단 모임' 그 남자가 앤디워홀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자신을 찍고 있는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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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의 선구자였던 앤디 워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었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캠벨 수프 깡통과 코카콜라 등의 상업 제품을 비롯해 마를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뚱 등 유명인을 그린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앤디 워홀이 '팩토리'라는 스튜디오를 마련해 대량 생산한 작품들은 현재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며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는 작품뿐만 아니라 삶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저격 사건이다.

22일은 앤디 워홀이 세상을 떠난 지 29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1987년 담낭 수술과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59세의 이른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사망하기 19년 전인 1968년 이미 죽음에 가까이 갔었다. 자신의 사무실이자 스튜디오였던 팩토리에서 총을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워홀의 팩토리에는 히피나 부랑자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급진 페미니스트였던 발레리 솔라나스 역시 이곳에 출입하며 워홀의 작업에 참여한 바 있었다. 솔라나스는 워홀이 만든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에게 자신이 쓴 대본도 보여줬다고 한다.

특히 솔라나스는 SCUM(Society for Cutting Up Men)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일한 멤버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 모임의 명칭은 '남자 절단을 위한 모임', '남성 거세를 위한 결사단체'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솔라나스가 쓴 이 모임의 성명서인 'SCUM Manifesto'는 남성이 세상을 망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남성을 제거하는 모임인 SCUM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이 당시 가부장제에 대한 조롱인지, 아니면 솔라나스의 진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하튼 솔라나스와 SCUM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1968년 앤디 워홀 저격 사건을 통해서였다. 솔라나스는 팩토리에서 워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는 폐와 위, 간, 목을 관통 당했다. 워홀은 응급 수술을 거쳐 겨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이날 저격 사건으로 인한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충격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솔라나스는 워홀을 쏜 뒤 자수했고 워홀이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했다"고 주장했지만 살해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솔라나스는 3년을 복역한 뒤 풀려났고 워홀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8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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