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 모델 수출 전도사, 박광기 前삼성전자 부사장
저성장시대 뉴패러다임 제안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하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위기의 실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지금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국내외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단순한 리스크가 아닌 경제성장의 변곡점에 와 있다는 거죠. '활용ㆍ융합(상생)ㆍ본질' 가치 중심의 새 패러다임으로 혁신하지 않는 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설 땅은 영영 사라질 지도 모릅니다."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산업한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박광기 전 삼성전자 부사장(53)의 말이다. 그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198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30여년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해 세계 93개국을 거치며 해외사업 전반을 두루 경험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표적인 해외파 기업인으로서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한복판에서 일한 그가 신간 '어떻게 다시 성장할 것인가(21세기북스)'를 내놓고 '위기는 곧 기회'라는 희망과 함께 한국의 미래 30년을 이끌 새로운 청사진을 제안했다.
3일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간다고 하는데 이미 10년 전부터 위기는 시작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일본이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한 것처럼 한국도 잃어버린 10년을 이미 경험했으며, 나아가 또 다른 10년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조선ㆍ철강ㆍ화학ㆍ반도체ㆍIT 등 주력업종들이 몇 년 간의 시차를 두고 줄줄이 성장세가 꺾이고 있는 점을 그 증거로 들었다. 특히 중국이 내수와 3차 산업 중심의 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는 뉴노멀 시대를 선언한 것 역시 한국에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라는 외부적 신호라고 했다.
박 전 부사장은 "한국경제가 또 다시 성장하려면 중국 경기 둔화, 미국 금리 인상 등 외부상황만 탓할 게 아니라 상위 30% 선진국과 150여 개발도상국 사이에 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며 "한국형 산업화 단지 프로젝트가 그 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의 인적ㆍ기술적 자원을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의 산업한류로,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받아 경제적 자립을 꾀할 수 있다.
"압축성장의 경험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3차 기술컨설팅 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입니다. 700만 베이비부머 기술자들과 청년인력, 대ㆍ중소기업의 기술 인프라, 한국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교육 콘텐츠가 융합한다면 그 시너지는 상상 이상이겠죠."
산업한류의 아이디어는 2011년 7월 넬슨 만델라(1918~2013)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구체적으로 그 윤곽이 잡혔다. 그는 "만델라 대통령은 자국민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얻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산업인프라를 희망했다"며 "(만델라는)3D부터 최첨단까지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한국만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해 5월 맥킨지가 신흥국 수요를 중심으로 한 세계 인프라시장 규모를 2030년 57조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것도 그는 기회로 본다. 그는 "고도성장기에 비축한 유보금이 고갈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 즉 골든타임은 고작 2~3년 안팎"이라며 "한국기업과 국민은 국가절벽 사태가 오기 전에 지금의 국제경제학적 좌표를 토대로 미래로 발을 내딛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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