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지난달 인공지능 엔진 '텐서플로'(TensorFlow)를 오픈소스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텐서플로는 '구글 포토' 등 구글의 핵심 서비스에 쓰이는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8월에는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파스(Parse)가 자사의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오픈소스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파스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앱 개발 플랫폼으로,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앱 개발자와 50만개 이상의 앱을 지원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평균 사흘에 한 번 꼴로 오픈소스를 공개할 만큼 열성적이다.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그저 선행차원에서, 혹은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개방했을 리는 없다.
분명한 것은 페이스북의 가세로 수많은 개발자들이 오픈소스 생태계에서 새로운 기술을 접하고, 관련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개방은 교류를, 소통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페이스북과 개발자 모두를 이롭게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공유의 바람이 과학기술계에도 일기 시작했다. 지식과 정보를 개방하고 나누려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의 흐름은 이전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시도되어 왔지만 최근 온라인을 타고 급격하게 번지고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뭔가 비밀스럽게 활동할 것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던 과학자들이 공동연구는 물론 그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고 정보를 공개하는 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 권위 있는 과학저널 대신 많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온라인 출판시스템에 논문을 투고하는 학자들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오픈 사이언스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적 석학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OECD 본부가 있는 파리를 벗어나 52년 만에 처음으로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과학정상회의 자리에서다. 이번 회의에서는 기후변화와 환경, 에너지, 고령화, 기아 등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는데, 이들은 모두 지구촌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이면서 협력과 공생의 노력 없이는 풀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고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함께 공유할 오픈 사이언스 인프라 구축이 절실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오픈 사이언스의 흐름은 여러모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떠올리게 한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단순한 인쇄술의 발전을 넘어 세상을 변모시킨 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까지 소수 권력층이 독점해온 성경과 고전들을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인쇄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은 성경 한 부를 필사(筆寫)하는 데 꼬박 3년 이상 걸리던 시간을 단축했을 뿐 아니라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던 서적을 대중들도 향유할 수 있게 한 지식혁명이었다. 나아가 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대중들이 늘면서 인류는 중세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르네상스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융합과 협력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번지고 있는 오픈 사이언스의 흐름은 우리에게 더욱 의미심장하다. 지식기반사회에서는 지식이 가치를 창출하는 최고의 경쟁 전략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과학기술과 인재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우리로서는 참여와 공유를 중심으로 하는 오픈 사이언스가 점점 더 유효한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을 의미하는 단어 'Science'가 '지식'을 가리키는 라틴어 'Scientia'에서 유래한 것이 우연만은 아닐 터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2014년 통합 이후 소관 25개 출연연구기관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시너지를 높이는 융합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016년은 연구회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개방과 협력을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과학 르네상스를 여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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