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한진그룹 창업 70년을 맞아 고(故) 조중훈 창업회장의 전기가 출간된다. '사업은 예술이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는 전기에는 대한민국 물류사와 함께 성장한 한진그룹의 사진들이 다수 공개됐다. 한진그룹은 사진들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한진그룹 트럭 한 대로 시작=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해방 전 운영하던 보링 공장을 일제의 기업정비령에 의해 정리했다.
그는 정리하면서 받은 돈과 저축한 돈을 합쳐 트럭을 한 대를 장만했다. 1945년 11월 1일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한진(韓進)'은 '한민족 전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한국의 진보를 위해 '한진상사'가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신뢰로 얻은 미군 군수품 물류 사업= '처음엔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 1950년대 조 회장은 미군이 인천항으로 반입해 수십만 평 규모의 부평 보급창을 거쳐 의정부, 동두천 등지의 부대로 운반하는 군수품에 주목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한 트럭에 몇 만 달러나 되는 군수품의 수송을 한국 업체에 선뜻 맡길 수 없었다.
조 회장은 캔맥주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했다. 미군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장 큰돈이 안 되더라도 신뢰를 쌓기에는 충분했다.
한진상사의 미군 수송 용역은 한진상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부실덩어리 한국항공공사 대한항공으로 탈바꿈= 조 회장도 여러번 인수를 고사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고,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까지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전용기는 그만두고서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여행 한 번 해보는 게 내 소망"이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았다.
조 회장은 이후 누적 적자 27억원의 부실 국영기업이었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키로 결정했다.
조 회장은 주식회사 '대한항공'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민항시대를 열었다.
◆대한항공에 이어 한진해운 출범= 해운사 설립을 준비하던 조중훈 회장은 1977년 초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항공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육상운송과 항공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해운 발전에도 힘써 달라"는 격려를 받는다.
조 회장은 컨테이너 선사 설립을 1년 앞당겨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하고 바다로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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