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서 가장 먼저 호명됐던 브라질 경제가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브라질 통화인 헤알화(貨)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브라질 국민의 소비력마저 급감하면서 한국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확산되고 있다.
8일 한국무역협회와 KOTRA,자동차산업연구소 등에 따르면 내수경기 침체, 심각한 인플레이션, 재정수지 및 수출전망 악화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려왔던 브라질 경제가 최근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헤알화 가치 폭락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완화 조짐이 보였던 긴축정책은 예상보다 오랫동안 지속될 전망이며 헤알화 절하로 인해 기업과 정부는 부채 상환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9월 기준 헤알화 가치는 최근 12개월간 72%가 하락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분은 소비자 가격에 전가돼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브라질 전국소매업협회(CNC)에서 발표한 8월 가계소비지수는 전월대비 5.9% 하락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경기 회복의 불투명성이 심화됨에 따라 외국기업의 대브라질 투자진출과 투자가들의 투자 심리도 악화되고 있다. 브라질 경제연구기관 제툴리오바르가스재단(FGV)은 "환율 급등뿐 아니라 브라질 정부의 고강도 긴축정책, 국가신용등급 강등 등 여러 대내외 악재가 겹쳐 9월 브라질의 산업신뢰지수(ICI)가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인 66.3포인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14년 외국인의 대브라질 투자액은 969억 달러였으나 올해는 650억 달러로 전년대비 49%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거대 소비시장인 브라질의 경제위기는 우리나라의 대브라질 수출과 현지 진출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대브라질 수출은 2014년 7월 감소세로 전환된 뒤 감소폭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실업률 상승과 소득 감소, 물가 상승, 소비자 심리 저하 등으로 인해 대브라질 소비재 수출은 지난 7월과 8월 각각 65.3%, 68.3% 감소하며 특히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부문별로 보면 자동차의 경우 엔진, 트랜스미션 등 핵심부품을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수입 조달하기 때문에 환율 폭등으로 많은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 소비둔화로 자동차 판매가 하락해 우려가 커지는 마당에 환율까지 상승하고 있어 걱정이 커지고 있다.
8월 브라질 자동차판매는 20만대로 전년동월대비 20%가 줄었다. 1∼8월까지도 169만1000대로 작년같은기간에 비해 20.4%감소했다. 고물가에 따라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세금과 금리인상 등으로 소비자신뢰지수는 매달 역대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8월 중 업체별 판매실적을 보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폭스바겐, GM 등이 전년동월대비 30%안팎 판매가 줄었다. 현대차(-9.0%)가 그나마 선방했지만 기아차도 판매가 37.2% 급감하는 등 모든 업체들이 역신장했다.
전자업계는 현지 생산품의 부품 중 많은 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현지 조달부품 계약도 달러 베이스로 납품되고 있어 막심한 환차손이 발생하고 있다. 현지 내수 시장점유율은 상승하는데 매출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종합상사들은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현지 기업의 수입이 급감하고 있으며 높은 기준 금리(14.25%)로 투자도 줄이고 있어 제품 판로가 막힌 상황이다. 최근 수년간 외국투자 증가로 현재 공급이 수요를 초과, 재고가 증가하는 상황이어서 수입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당장 현 상황을 극복할 타개책은 마련하기 어려우며 철수도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환율 변화 및 경제 동향을 관망하고 있다. '브라질 코스트'로 불리는 세금, 높은 물류 및 노무비용 등을 줄이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
브라질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도 대부분이 수출 감소에도 특별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관망 중이다. KOTRA 상파울루무역관 관계자는 "브라질 시장의 규모와 잠재력을 고려, 현재의 위기를 곧 극복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수출 중단이나 수출지역 변경 등과 같은 섣부른 판단은 내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이 당장 디폴트(국가부도) 위험은 낮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투자 감소,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하의 물가상승) 위험 상승, 주변국 경기 침체 등을 감안하면 경제·경제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탄핵 등 정치불안이 확대될 경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위기도 확대된다.
유승진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해야 한다"면서 " 신흥 소도시 등을 공략하고 브라질 소비자들의 줄어든 구매력을 감안해 저가형 정책도 펼치는 등 새로운 전략 구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