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송헌 김담 기념 학술대회 24일 개최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우리나라에서 혜성을 직접 관측한 시기는 언제쯤일까요. 최초로 목적의식을 갖고 현대적 정밀관측이 이뤄진 때는 세종 때였습니다. 조성왕조실록의 기록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죠. 1449년(세종 31년) 12월 22일자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입니다.
제목: "혜성이 나타나 이순지·김담에게 측후하게 하다"
본문: "전 서운 판관(書雲判官) 신희(申熙)가 아뢰기를, '이달 12월 12일 무오에 혜성이 동쪽의 천시(天市) 권내에 나타났었으나, 그 뒤 구름이 자욱하여 관측할 수 없더니, 21일 정묘에 혜성이 또 천시에 나타났는데 꼬리의 길이는 5, 6척 남짓하였습니다. 그리고 송나라의 분도(分度)로는 인마궁(人馬宮)4397) 이옵고, 미성(尾星)4398)의 도(度)이었습니다'하니, 이순지(李純之)·김담(金淡)에게 명하여 측후(測候)하게 하였다."
신희가 세종에게 혜성에 대해 보고하자 세종이 이를 천문 전문가인 이순지와 김담에게 관측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김담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김담의 호는 무송헌(撫松軒), 본관은 예안(禮安)입니다. 1416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김담은 19살 때 형(김증)과 함께 문과에 급제합니다. 형제가 나란히 집현전 정자(正字, 정9품)에 임명됐습니다. 집현전 학사 중 형제가 나란히 선발된 유일한 경우였다고 하는군요.
김담의 총명함은 곧 세종의 눈에 띄었고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그는 이순지와 함께 문과 급제자로는 예외적으로 과학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김담은 천문학 외에도 세법, 측량 제방 축조 등 수학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세종은 1434년(세종 16년) 간의대(지금의 천문대)를 설치하고 이순지(1406~1465)를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순지가 모친상을 당해 자리를 비우게 되자 김담이 그 직무를 대신 맡는데요. 이순지가 4개월 뒤 상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함께 일합니다. 김담은 이순지보다 10년 아래였고 직위 상 그 후순위여서 오늘날 마치 2인자처럼 인식되는데 그 능력과 업적은 결코 2인자가 아니었다고 하는군요.
김담은 1439년 왕명을 받아 이순지와 함께 역법 교정에 착수해 1442년에 칠정산(七政算) 내편과 외편을 완성하게 되죠. 칠정산은 '7개의 움직이는 별'이란 뜻입니다. 즉 해와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계산한다는 의미입니다.
칠정산 역법은 당시 1년의 길이는 365.2425일까지, 한 달의 길이는 29.530593까지 계산해 놓았습니다. 심지어 세종 29년(1447년) 8월에는 이 달 그믐에 일어났던 일식과 보름에 있었던 월식을 미리 예측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관측한 뒤 예측치와 관측치의 차이를 기록한 문건도 남아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세종과 당시 조선학자들이 '칠정산'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혼천의(渾天儀)와 간의(簡儀)와 같은 정밀한 천문관측 기구들을 직접 제작했고 이를 가지고 한양의 경위도와 동·하지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해 새로운 역법의 바탕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2016년은 무송헌 김담 탄생 600주년이 됩니다. 고등과학원(원장 금종해)은 한국천문학회 부설 소남천문학사연구소·한국과학사학회와 함께 '무송헌 김담 탄생 600주년'을 맞아 오는 24일 고등과학원 컨퍼런스 홀에서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합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24일 오후 1시30분부터 6시10분까지 고등과학원 1호관 5층 컨퍼런스 홀에서 진행합니다. 관련 내용은 김담 학회 홈페이지(http://home.kias.re.kr/MKG/h/kimdam2015)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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