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쓰이는 낱말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낱말은 신문에서 자주 쫓겨난다. 보편적이고 관행적인 금기어도 있겠지만, 데스크의 자의적인 기준이 개입된 금지어도 있다.
나는 추진(推進)이란 말을 못 쓰게 한다. 일본어 'すいしん'에서 온 이 말은, 우선 의미의 모호함 때문에 손쉽게 두루 쓰여 온 관보(官報)의 어투이다. 추진이라는 말을 쓰면 대개 기사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뜻을 살펴 뜯어보면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게 하는, 형식적인 췌사이다. 이런 말로 제목을 달아 오면 나는 어김없이 '검토' 혹은 '움직임'같이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인 말로 바꿔준다. 아예 빼버리면 의미가 단호해지고 명확해지는 경우도 있다.
혈세(血稅)라는 말도 금지다. 국민의 피같은 돈을 거둔 것이니 '피세금'이라 부르는 것이 일견 공감이 가는 듯하나, 자본주의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금에 대해 '혈세'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부당하고 무리하게 국민의 고혈을 짜낸다는, 오래된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돼있다.
패륜(悖倫)이라는 말도 가급적 쓰지 않게 한다. 패륜은 대개 천륜(天倫)이라고도 불리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 일어나는,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말한다. '패'라는 발음이 지닌 억센 느낌 때문에, 욕설처럼 선정적인 기분을 돋운다. 패륜이라는 말을 쓸 바엔 차라리 구체적인 행위를 명시하라고 말해준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짐승의 마음을 가졌다는 가차 없는 비판은, 일견 후련한 기분이 있지만 무지막지하고 비이성적인 기분을 돋운다고 생각한다. 매도는 종종 폭력이 된다.
폭락(暴落)이란 말도 자제하라고 말한다. 떨어지는 낙폭(落幅)이 큰 경우 저 말을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가능한 한 '하락'이나 '급락' 같은 말로 바꾸라고 한다. 폭락이란 말이 부추기는 선정적 뉘앙스가 시장을 정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돌파, 돌입, 돌연 따위의 말에도 빨간 펜을 자주 든다.
북한을 가리킬 때 자주 써온 '야욕' '도발' '호시탐탐' '만행' '책동' '흉계' 따위의 말들도 가능하면 쓰지 않도록 권해왔다. 편집데스크는 날마다 조간신문 13개와 석간신문 3개를 꼼꼼히 읽어야 하는 '신문 중(重)독자'이며, 소속된 신문지면 기사의 절반을 편집마감 전에 읽어야 하며, 그 나머지 절반은 다시 신문이 나온 뒤 읽어 점검해야 하는 열독노동자이다. 이렇게 읽는 까닭은, 제목 몇 줄을 뽑기 위해서이다. 수만 자의 기사들을 수백 자의 제목으로 뽑는 누에는 내부에서 피를 말려야 한다. 활어(活語)와 사어(死語)를 감별하고, 낱말이 지닌 고유의 식감과 특징을 분석하고 그 낱말을 요리해 감칠맛을 내려는 '언어셰프'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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