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은 생(生)으로 나오는 것(出)이고 사망은 죽어서(死) 없어지는 것(亡)이다. 정확히 말하면 출생은 생명이 생겨나는 수태(受胎)의 순간이 아니라, 배 속에서 10개월 동안 자라나, 자궁을 찢고 나오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므로 생 자체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인간은 두 번 탄생하는 셈이다. 한 번은 생명이 생겨나는 탄생, 그리고 또 한 번은 세상에 태어나는 탄생. 인간의 삶의 스케줄이라 할 수 있는 운명 또한 생명탄생과 세상탄생의 두 가지 시점에 모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다. 별의 운행에 따른 음양오행의 운명(사주팔자)은 물론 세상탄생의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 이렇게 두 번 탄생하도록 설계해놓았을까. 생명을 모체에서 인큐베이팅하는 과정은 왜 필요했을까. 복잡한 생명체를 만만치 않은 생존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조물주도 10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산다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조물주의 공력 또한 그만큼 많이 들었다는 얘기다. 우린 수태일을 생일로 잡지 않고, 출생일을 생일로 잡는다. 세상에 유통되는 '나'는, 태어나고난 다음부터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땅의 옛 나이계산 체계에서는, 희미하게나마 저 수태 지점을 고려해 한 해를 더 잡아준다. 영혼은 언제 육신에 깃드는가. 이것을 판별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수태될 때 깃든다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조물주가 인간을 세공하고 있는 임신의 어느 지점에 그것을 불어넣을 수도 있고, 또는 출세(出世)하기에 임박하여 그 소프트웨어가 깔릴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어나다는 말은 태(胎)에서 나온다는 뜻을 지닌다. 태생(胎生)을 푼 말이거나, 혹은 '태어나다'를 푼 것이 태생일 것이다. 이것은 그냥 '난 것'이 아니라, 10개월의 인큐베이터였던 '태'를 의식한 말이다. '나다'라는 것은 '나오다'라는 의미이다. 어딘가에 들어있다가 바깥으로 이동한 것이니, 출생의 의미가 담겨있다. 태어나다는 '태생과 출생'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말이다.
영어로 태어나는 것은 BIRTH이고 죽는 것은 DEATH이니, 삶은 B와 D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두 글자 모두 끝에 혀를 물고 있는 발음이니, 혀를 물고 태어났다가 혀를 물고 간다는 의미도 되지 않는가. 겨우 B와 D 사이를 옮기는데, 그럼 중간에 있는 C는 뭐란 말인가. CHOICE라고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모든 삶은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이다. 사르트르의 실존론(實存論)이 생각나는 멋진 착안이다. 어색하게 손뼉을 치며, '해피버스데이 투 파파'를 부르는 아들딸들을 보며 쓰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