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제거 수단 된 윤리위…정치력 발휘 못해
국민의힘 내 당권파·비당권파 간 힘겨루기가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징계 논의를 일체 중단하자"는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요청에도 당권파·친한계가 각기 배현진 의원, 강성 보수성향 유튜버 고성국씨에 대한 징계 절차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서울시당 윤리위원회(위원장 김경진 서울 동대문구을 당협위원장)는 전날 밤 제5차 회의를 열고 고씨에 대해 '탈당 권고' 징계를 하기로 의결했다. 고씨는 134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고성국 TV를 운영하는 시사평론가 출신 유튜버로, 강성 보수세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앞서 친한계 의원 10명은 한동훈 전 대표 제명안이 의결된 직후인 지난달 30일 시당 윤리위원회에 평당원인 고씨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 고씨가 방송에서 당사에 전두환·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이어가는 등 당 윤리규칙 제4조(품위유지)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징계 절차에 착수하기 전 시당은 윤리위원장에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경진 위원장을 임명했다. 시당위원장 역시 친한계인 배 의원이다.
시당 윤리위가 내린 탈당권고는 열흘 이내 탈당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자동 제명되는 중징계다. 앞서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 역시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같은 징계를 받고 제명됐다. 시당 윤리위는 "내란죄로 처벌받은 전직 대통령들을 미화하고, 법원 난입 폭력 사태를 옹호한 발언은 공당의 당원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해당 행위"라며 "고씨를 당에 잔류시키는 것은 당의 기강을 해치고, 국민 신뢰 회복에도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고씨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시당 윤리위의 결정에 대해 "자격 없는 시당 윤리위원장(김경진 위원장)이 평당원의 소명권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불법 결정"이라며 "(탈당 권고 처분) 통지가 오는 대로 즉시 이의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고씨가 즉시 이의신청에 나서겠다고 한 만큼 징계는 중앙당에서 2라운드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씨도 이를 염두에 둔 듯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소명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당규에 따르면 시·도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의결에 대한 이의신청의 심의·의결은 중앙윤리위 소관이다. 아울러 당규엔 당 대표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징계처분을 취소·정지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대로 당권파에선 배 의원에 대한 징계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앞서 이상규 서울 성북구을 당협위원장은 시당위원장이 주도해 낸 한동훈 전 대표 징계 반대 입장문이 시당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왜곡했다는 이유 등으로 중앙윤리위에 배 의원을 제소한 바 있다. 친한계는 이를 두고 '고씨 징계요구서 제출에 따른 보복성', '시당 장악을 위한 시도'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전날 문화일보 유튜브에 출연해 "당내 문제는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면서 "(배 의원 징계 건은) 당헌·당규에 따라 윤리위가 결정할 문제다. 윤리위에서 다룰 것은 윤리위에서 다루는 것이 당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당권파로 분류되는 한 최고위원도 이날 통화에서 "고씨는 단지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 것뿐이지만, 배 의원은 공천권을 무기로 지방선거 출마자를 압박한 것"이라면서 "시당위원장의 권한을 사유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당내에선 윤리위가 정적 제거의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 지도부는 물론 주요 인사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타협을 이뤄내는 대신, 당헌·당규를 이용해 상대방을 숙청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우려다. 당장 지난달에는 한 전 대표가 이른바 당원 게시판 여론조작 의혹으로 중앙윤리위-최고위를 거쳐 제명 처분됐고, 김 전 최고위원 역시 탈당 권유를 거쳐 제명됐다. 중앙윤리위는 김 전 최고위원에게 내린 징계 결정문에서 "당 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의지 총합으로 만들어진 정당을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적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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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소장파 모임인 '대안과 미래' 소속인 이성권 의원은 전날 회동을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덧셈의 정치를 하지 못할망정, 뺄셈의 정치를 지속하고 당내에 갈등·배제의 정치가 횡행하는 것은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관련자들의 자제와 철회, 지도부의 정치적인 노력을 촉구한다"고 했다. 당 한 관계자는 "강성, 팬덤에 기반한 이들이 당내 여론을 주도하면서 중진·원로들마저 중재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이 됐다"면서 "당내 정치에 대해선 정치 무관심층이 될 판"이라고 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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