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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내 옆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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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존재하는 惡
잔혹함에 대한 관점 고민
심리학 연구성과 종합
평화·폭력 가로지르는 '악의 장벽' 이론 제시


악마는 내 옆집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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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나 2002년 조지 W. 부시가 대내외적으로 내건 '악(evil)'이라는 레토릭은 쏠쏠한 효과를 얻었다. 레이건은 냉전이 막바지에 있던 당시 소련을 가리켜 '악의 제국'이라 했으며, 부시는 테러지원국을 압박한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포함해 북한ㆍ이란 등을 '악의 축'이라 지칭했다.

어느 시대든 국제정세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해 복잡하게 굴러가지만, 미국의 행정수반이 선악(善惡)의 구도를 확립하자 모든 게 단순해졌다. 소련이든 이라크든, 악은 벌을 받고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가장 앞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악으로 규정됐는지, 나아가 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애덤 모턴의 '잔혹함에 대하여'는 악, 나아가 악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에 관한 책이다. 영국ㆍ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명예교수로 있는 저자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철학과 심리학에서의 악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악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어떤 조건을 갖춰야 악이 되는지를 살피는 게 아니라(이는 오히려 우리가 악을 연구할 때 피해야 할 접근법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주위의 잔혹행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 현상을 설명하고 대응방법을 마련하려면 어떤 개념들이 필요한가?"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유럽의 홀로코스트나 크메르루즈의 대학살과 같이 과거 있었던 거대한 참사는 물론 오늘날에도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살해ㆍ강간ㆍ고문과 같은 잔혹한 행위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지만 우리가 마주해야할 실재다.


저자는 심리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악의 장벽 이론을 제시한다. '평화적'인 상태와 '폭력적'인 상태를 구분짓는 장벽이 있는데, 악한 동기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은 이 장벽이 지닌 금지와 억제를 넘어서는 일이 가능하다. 저자의 장벽이론에 따르면 "악한 행동은 잔혹 행위를 막는 장벽을 피하는 체계적인 방법에서 기인"한다.


이 같은 설명을 토대로 악한 성격은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잔혹한 행위를 막는 정상적인 장벽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은 사람, 장벽을 피하는 법을 익혀 필요할 때마다 이를 활용하는 사람, 장벽을 무력화하는 문화적 토양에서 신념체계를 기른 사람, 끝으로 자유롭게 장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신념체계와 사고방식을 스스로 만들어 낸 사람 등이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서구 문화권에서 악(evil)이라는 단어의 기원과도 맞닿아있다. evil은 '초과하다', '넘다'라는 뜻을 가진 인도유럽어 upelo와 관련된 중세 영어 ivel에서 유래됐다.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악마는 내 옆집에 산다


악은 평범하다는 논지도 저자가 힘을 주는 부분이다. 독일의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전범에 대한 재판기록을 정리하며 쓴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중심 주제를 이어간다. 이 명제는 익숙하면서도 실제 우리 삶 속에선 대체로 녹아들지 않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요인에 이끌린다", "끔찍한 행동 뒤에는 매우 특징적인 비정상적 동기 유형이 있다"는 인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악이 존재한다는 관념 자체가 위험하다면서 "평균적인 독자와 대다수 악행자 사이에는 상상하지 못할 차이가 있는 게 아니며 세상의 악 대부분은 오히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아렌트나 아우슈비츠에서의 실제 경험을 쓴 프리모 레비의 생각을 잇지만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과거와 같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사회가 아닌 자유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건 사회에서도 평범한 악이 출몰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소시오패스의 경우 악을 행할 가능성이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소시오패스화(化)'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기아에 허덕이는 극빈국가에 둘러싸인 부유한 국가의 사례와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자국 내 소수민족에 대해 법적 보호장치를 거세하는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국가의 잔혹함이다. 저자는 이를 "모두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실제 일어날 가능성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럽의 그리스 사태나 대선을 앞둔 미국 공화당에서 특정 후보가 지지를 얻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저자의 표현을 역설(逆說)처럼 들리게 만든다.


모두 4장(章)으로 구성된 책의 마지막은 '악과 대면하기'다. 악 혹은 잔혹한 행위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초작업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아래 자행된 범죄행위를 벌하기보다는 진실을 찾는 데 주력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그런 면에서 옳았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원저의 제목은 '악에 관하여(On evil)'다. 대중의 관심도에 크게 괘념치 않으며 학술분야 전반에 걸쳐 다양한 책을 많이 내는 영국 라우틀리지의 Thinking in action(국내 한 출판사에선 '행동하는 지성'으로 번역한다)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현지에서는 출간된 지 10년도 넘었으나 2015년을 살아가는 한국에서도 적잖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역자가 책 말미에 남겼듯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나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친일행위에 대한 청산은커녕 역사적 사실관계조차 호도되는 한국의 시대상황이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저자 스스로도 밝히듯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도덕의 계보'나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조나단 글로버의 '휴머니티' 같은 책을 곁들여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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