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얼굴 바뀌는 남자 그를 사랑한 여자의 이색 러브 스토리
광고같은 감각적 묘사 훌륭하나 원작과 차별되는 독창성은 결여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 의자는 사용된 목재가 조금 특별해요.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참 신기하죠?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이젠 또 이렇게 의자였다가."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이수(한효주)가 처음 만난 우진에게 하는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우진의 처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사랑은 내면이 중요하다는 영화의 주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서술은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과 같다. 원작을 옮겨 나르기 바쁘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작은 칸 국제광고제와 클리오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석권한 인텔과 도시바의 합작 6부작 광고 '더 뷰티 인사이드'다. 용필름의 임승용(45) 대표가 2013년에 판권을 샀다. 실패작도 많지만 '올드보이(2003)', '방자전(2010)' 등으로 '판권 감식안'이 빼어나다고 평가받는 기획자다. 그는 메가폰을 최정상급 광고 연출가이자 오랜 친구인 백종열(45)에게 맡겼다. 그동안 광고 감독으로서 선보인 독창성이 멜로에서 요구하는 섬세한 연출과 맞닿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임 대표의 판단대로 미장센은 훌륭하다. 거의 모든 신이 광고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백 감독은 시나리오의 기본 성격인 판타지를 멀리하고 모든 공간을 현실적으로 담는다. 필터 등의 인위적 조명을 피하고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낮은 콘트라스트를 유지한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영화를 끌고 간다.
그 최대 수혜자는 한효주다. 우진이 첫눈에 반하는 설정을 카메라가 충실히 따른다. 당연히 예쁘게 나온 컷이 많다. 화장품 '숨'의 광고로 이미 한효주를 조명했던 백 감독은 "얼굴 왼쪽에서 턱으로 빠져나가는 선이 포토제닉이다. 그 부분을 많이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했다. 비슷한 차원에서 우진을 연기한 서강준(22)도 얼굴 오른쪽이 많이 나온다.
감각적인 연출은 풀 샷에서도 도드라진다. 특히 언덕길을 오르면서 이수에게 이별을 고하는 우진의 모습이 매우 쓸쓸하게 나타난다. 백 감독은 감성을 세밀하게 드러낼 수 있는 클로즈업 샷을 넣지 않았다. 풀 샷을 롱 테이크(카메라를 한 번 작동시켜 하나의 숏을 촬영하는 것)로 잡아 미묘한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우진을 연기하는 김주혁의 구부정한 라인을 부각시켜 허탈감을 배가시켰다. 기억에 남을 만한 컷을 곧잘 만들면서 남다른 색채감을 자랑하는 백 감독의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된 부분이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극 초반은 모조에 가깝다. 이야기는 물론 촬영, 편집을 그대로 가져왔다. 우진이 자고 일어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고 설명하는 첫 시퀀스부터 이수와 우진의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가구, 여자로 변했을 때 비밀을 털어놓는 설정, 심지어 이수의 헤어스타일까지 똑같다. 원작이 광고라서 계속 노출한 노트북까지 그대로 실어 베끼기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국적 정서나 재구성한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콘텐츠를 왜 제작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그런데도 엔딩 크레디트의 각본에는 김선정과 박정예라는 이름이 올라간다.
이런 약점은 영화 전반에 걸쳐서도 드러난다. 일단 광고감독들이 처음 영화를 만들 때 노출하는 긴 호흡에 대한 불안이 여지없이 나타난다. 원작의 단순한 틀을 깨지 못하고 내내 겉돌다 일반적인 결말에 다다르는 구조다. 원인은 불균형에 있다. 불편함을 극복하고 사랑을 찾으려는 우진을 보여주는데 쏠린 나머지 이수의 입체감을 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수가 적극적으로 자세를 바꿔 재결합을 이루는 과정이 공감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개연성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수는 우진을 만나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원만한 직장생활이 어려워진다. 정신치료과를 드나들며 약을 복용하기에 이르고 결국 우진이 제시한 이별에 응한다. 그 뒤 이수의 얼굴은 밝아진다. 트레이닝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활기를 되찾고 직장에서도 다시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10개월 뒤 재회한 우진에게 재결합을 권하며 그는 "네가 함께 해줄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덜 힘들더라"라고 말한다. 백 감독은 "실연을 당하면 누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일상적인 모습이 이수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영상에서 감독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잡히지 않았으니 한효주의 연기 혹은 백 감독의 연출에 착오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뷰티인사이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영화는 원작처럼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수와의 갈등을 해소하는 건 모두 잘생긴 우진들이다. 그렇지 않은 우진들은 "오늘 좀 불편하게 생겼지?" 등의 대사를 하는 코믹 도구로만 활용된다. 그렇다고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다. 우진의 친구 상백(이동휘)이 차분한 흐름을 깨뜨리는 유일한 감초지만 저질스런 농담 등 단편적인 웃음을 전하는데 그친다. 우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지만 그의 고충과 속내를 들어주는 기능도 마비에 가깝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