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면, 물 문제는 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 부족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물에 관한 국제적 협의체인 UN-Water는 2025년이 되면 18억명의 인구가 절대적인 물 부족 지역에 살게 될 것이라는 보고를 하고 있고,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태평양물포럼이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는 아태지역 국가의 거의 4분의 3이 물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절대적으로 마실 물이 적다는 점도 문제지만, 물의 질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농업용수의 질이 나빠지면 이는 식품의 안전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식량 안보의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물은 또 경제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의 경제 성장 추세가 유지된다면 2030년이 되면 세계 물 수요는 현재의 4500㎦에서 40% 증가한 6900㎦로 늘어날 것이라는 보고도 있고 세계 500대 기업의 68%가 물과 관련된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도 그렇지만 물 또한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만이 아니라 이른바 물발자국(water footprint)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물발자국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직접 혹은 간접으로 사용된 담수의 총 사용량을 의미한다. 직접이란 자기 사업장에서 직접 사용한 것이고 간접이란 공급망에서 사용한 것을 말한다. 물 사용량은 소비되었거나 증발한 양과 오염되어 못 쓰게 된 양의 합으로 측정된다.
물발자국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푸른 물발자국'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사용량을, '녹색 물발자국'은 땅에 흡수되어 저장 중인 빗물의 사용량을, '회색 물발자국'은 오염된 물을 환경기준에 맞게 정화하는 데 사용된 물의 사용량을 각각 지칭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들의 물발자국을 보면 우리의 소비 행태를 크게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150g의 버거를 콩으로 만들면 160ℓ의 물이 들어가고 쇠고기로 만들면 약 1000ℓ가 들어간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대략 300㎖에 불과하지만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데 드는 물을 감안하면 140ℓ가 든다. 쌀 1㎏은 3400ℓ, 사과 한 개는 70ℓ, 소고기 1㎏은 1만6000ℓ, 티셔츠 하나는 4000ℓ의 물이 각각 들어간다. 중국인의 물발자국은 1인당 연간 1070㎥이고 한국인은 1179㎥라고 한다. 한편 일본인은 1인당 연간 1380㎥인데 그중 77%가 나라 밖에서 소비된 물이고, 미국인은 2840㎥인데 그중 20%가 나라 밖, 특히 중국 양쯔강 물을 소비한다.
물 문제는 기업의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물을 가장 많이 쓰는 산업은 농업이다. 지구상의 물 92%가 농업용으로 소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공업이나 광업, 그리고 서비스 업종이라고 해서 물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투자자들이 기업의 물 경영 성과를 투자 의사 결정에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물을 그야말로 '물 쓰듯' 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세계의 투자자들이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를 대신해 기업에게 온실가스 경영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분석해 투자의사 결정에 활용하는 국제적인 비영리기구인 영국의 CDP는 60조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전 세계 573개 금융기관의 위임을 받아 기업에게 물 관리와 지배구조, 물 관련 위험과 기회, 물 회계 등 물 관련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는 "CDP Water" 프로젝트를 2010년부터 수행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CDP의 한국 파트너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물과 관련이 깊은 국내 45개 기업에 물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CDP Water Korea" 프로젝트를 지난해에 시작해 금년 하반기부터 이런 정보가 세계 투자자들을 위한 지침으로 활용될 것이다.이제는 물이 우리의 생사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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