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보상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나선 조정위원회가 23일 권고안을 내놓은 것과 관련, 논란이 되는 쟁점이 속속 추가로 나오고 있다. 단순히 보상의 범위나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권고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목적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24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정위가 권고한 '공익법인 설립'은 삼성전자 이사회와 주주들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익법인의 목적에 맞지 않게 특정 기업의 경영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들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정위원회가 내 놓은 공익법인 설립안은 정상적인 회사의 경영진이라면 절대 수락하기 힘든 형태로 구성돼 있다"면서 "사업장을 내부 감시하고, 영업비밀에 관한 규정을 직접 만들고 실행한다는 것은 향후 심각한 경영 간섭이 벌어질 수 있는데 3개 주체의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조정위원가 내 놓을만한 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정위가 권고한 공익법인의 발기인은 대한변호사협회, 한국법학교수회, 경실련, 참여연대, 산업보건학회, 한국안전학회,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등 7곳의 단체로부터 1명씩 추천받아 위촉된다. 발기인은 공익법인 설립 후 공익법인의 이사가 돼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를 구성하게 된다. 이 공익법인에는 재계 측의 입장을 반영할만한 이사는 한 명도 반영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도 포함되지 않도록 돼 있어 삼성전자는 기부만 할 뿐, 보상 산정 과정에서 관여할 수 없다.
또한 삼성전자가 포함되지 않은 공익법인에 사업장 내부점검권을 줘 경영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공익법인 이사회가 추천한 옴부즈맨 3명은 삼성전자 사업장의 주요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고, 필요할 경우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실상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한 간섭 우려가 제기된다.
만약 공익법인을 설립할 때 필요한 1000억원을 모두 소진할 경우 삼성전자가 추가로 돈을 지급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경영진은 물론 주주입장서도 찬성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조정위가 정한 질환과 업무 연관성을 불문한 채 치료비 전액을 보전하라는 권고 역시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근간을 흔들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적 영역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개별기업의 예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만약 권고안을 받아들일 경우 공적으로 정한 유해물질 외에 나머지 부분을 삼성만 예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퇴직 후 잠복기를 최장 14년까지 보장해 보상하라는 조항도 논란이다. 정년연장을 감안해 65세에 은퇴한다면 80세까지 보장하라는 것인데, 70대 남성의 3분의 1이 암환자로 조사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특히 재계에서는 삼성의 사례가 재계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고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3개 주체를 충분히 만나지 않고 결론을 냈다는 점 때문에 협상 주체들 간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들이 포함된 것은 물론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보상과 배려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빠른 보상 후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원했던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번 결정에 실망스러운 눈치다. 새로운 공익법인 구성원을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경우 또다시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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