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둘러싼 논란의 과정은 블랙코미디다. 5월 구원투수라던 정성립 사장이 취임하고 이후 노르웨이 선박박람회에서 잇달아 신규 수주에 성공하면서 신임 사장 컨벤션효과가 있는 듯해 보이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그러다 석달도 안돼 가족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 줄거리가 바뀌기 시작하며 코미디와 공포가 버무려지고 있다.
정 사장이 수 조원대의 부실이 숨겨져있고 이를 털고 가겠다(회계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면서 대규모 부실 공포가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조선업계, 주주, 투자자, 채권단과 정부,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대우조선은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고 부실을 누가,왜 숨겼는가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졌다.
기업부실의 1차적 책임은 경영진에 있고 2차적 책임은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와 감사에 있다. 대우조선 주인은 산업은행(3월 31일 현재 지분 31.5% 보유)이다. 금융위원회(12.2%), 국민연금(7.09%) 등이 5%이상을 보유했다. 대우조선에 들어간 공적자금이 19조원이다. 20조원에 가까운 혈세가 투입된 기업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일수록, 규모가 클수록 '빨대'들은 많다. 이곳저곳에서 경영과 인사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빨대라고 한다. 경영진의 자율경영이 어려운 구조이고 이를 역으로 이용해 공적자금을 물쓰듯 쓰고 부정과 비리, 청탁을 저지르는 일도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애초부터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성추행파문'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2년 3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사외이사를 지냈고 새누리당, 보수단체, 국정원,장성출신들이 사외이사로 포진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이사회 안건 100% 찬성으로 모두 가결됐다. 평상시 경영을 감시해온 산은이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의 경영실사를 하고 책임소지를 밝혀낸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증권사도 자유로울수 없다. 정 사장이 2분기 손실을 언급한 뒤 10개 증권사에서 나온 대우조선 보고서 가운데 매도 의견은 없었다. 반면에 국민연금은 지난 5∼6월 세 차례에 걸쳐 대우조선 주식을 대거 털고 갔다. 지분율이 7.09%에서 6월말 4.0%로 낮아졌다.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은 '뒷북강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우조선의 부실의 원인이 된 해양플랜트산업도 이명박정부에서 출발해 박근혜정부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산업이다. 이 대통령은 해양플랜트를 제2의 조선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고 박 대통령은 해양플랜트의 재도약에 앞장서겠다고 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전체 수주잔고에서 해양플랜트의 비중은 2011년 44%였으나 2012년 56%로, 2013년에는 63%까지 치솟았다.
책임을 따지자면 대우조선 내부는 물론이고 산은, 정부, 정치권, 청와대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주인없는 회사가 아니라 주인행세만 하던 이들이 많았던 것이고 감시자들은 감시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슬프지만 쓴 웃음이 나오는 블랙코미디다.
이경호 산업부 차장·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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