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국회법의 진실은 사라지고 유승민 사퇴만 남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 충돌에서 시작된 국회법 개정안 사태가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결정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지만 정작 논란의 진실은 가려져 있다. 한 사람의 거취 결정으로 청와대와 국회를 흔든 초유의 사건이 막을 내리면서 '유승민 정국'에 가려진 사태의 본질도 동시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양새다.
사태의 원인이 됐던 국회법 개정안의 마지막 길은 허망했다. 국회는 지난 6일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실패했다. 국회법 개정안은 내년 6월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시행령을 둘러싼 행정부와 입법부의 오랜 갈등을 담은 법안은 재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사라졌다. 지난 5월 똑같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 화두가 됐던 삼권분립 문제는 거론 조차 되지 않았다.
허망하게 국회법 개정안이 폐기된 건 본질이 사라진 현재 정국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거부권의 불똥은 엉뚱하게 유 원내대표의 거취로 집약됐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와 함께 법안 통과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의 비판에 화들짝 놀라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에만 집중했다. 의원들의 머리 속엔 국회법은 사리지고 '유승민'만 남았다. 본질인 국회법은 폐기해 버리면 그만인 골치덩러리로 전락했다.
해결되지 못하고 묻힌 과제는 곪을 일만 남기 마련이다. 정부의 대책이 국회에서 법안으로 완성되고, 완성된 법안을 정부가 다시 실행하는 순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 갈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삼권분립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국회법 개정안이 갑작스럽게 폐기되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삼권분립 원칙하에서 모법과 시행령의 상호충돌 방지를 위한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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