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권력 맞섰다' 이미지…'브랜드 가치 높이는 계기' 평가 줄이어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새누리당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당 의원총회 개최로 일단락될 전망이다. 하지만 의총 결과와 상관없이 유 원내대표는 거부권 정국을 계기로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게 됐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 수용을 거부한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예상과 달랐다. 원내대표 자리에서 버티며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것이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 등을 거론하며 맹비난하고 친박(친박근혜)계도 끌어내리기에 가세했지만 끝내 자리를 고수했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을 껑충 뛰게 만들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유 원내대표의 이름인 '승민(承旼)을 '勝民(국민의 승리)'으로 표시하고 "국민여론재판에서도 승리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이 오히려 정치인 유승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한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회법 보다 유 원내대표 거취가 주목을 받으면서 오죽하면 '거부권 정국'이 아닌 '유승민 거취정국'으로 불려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 이미지는 거대 권력과 맞서는 존재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정군기 홍익대 교수는 "유 원내대표의 개혁적 성향과 지도력, 당당함이 많이 강조됐다"면서 "사퇴해도 본인의 권위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거부권 정국 사태의 주체는 더 이상 박 대통령이 아니다"면서 "사퇴를 하더라도 유 원내대표 결단이 있어야 하는 만큼, 이제는 원내대표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례를 보더라도 대통령과 맞선 정치인들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참여정부 때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수도 이전에 반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격돌했다. 유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의 사퇴 압박에 굴하지 않는 모습이 여론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
그동안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각을 세운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원내대표 선출 당시 "당이 주도하는 당청관계를 만들겠다"며 청와대를 자극하더니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의를 밀어붙여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또 교섭단체 연설에서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보수 개혁'이라는 화두를 잘 잡았다"고 평가했다. 청와대가 따라오면 호응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개혁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유 원내대표가 치고 나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일단 유 원내대표는 의총을 계기로 당분간 휴지기가 불가피해졌다. 백의종군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내년 총선 지역구 선택이 과제인데, 그 이후에는 넓어진 정치적 입지를 바탕으로 보폭을 확대할 전망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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