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지난해 선정한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지록위마라 일컬었던 상황이 덩달아 변하지는 않는다. 이 지록위마를 글자 그대로 풀자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인데 그 유래는 이렇다. 진시황이 죽자 조나라 출신 환관 조고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다른 신하들이 자기 말을 들을지 시험하기 위해 어린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을 바친다고 한다. 호해가 보기에는 사슴인데 말이라고 하니, 정말 말로 보이는지 주변에 묻는다.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그렇다고 하였다. 윗사람을 농락하는 것을 일컫는 지록위마가 이제 고의로 사실을 호도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사슴에는 꽃사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류만큼이나 생김새도 크기도 다양하다. 무스 또는 엘크라 불리는 북방의 사슴은 어깨높이가 2m를 넘고 700㎏까지 나간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면 덩치뿐만 아니라 두부(頭部)를 언뜻 보아서는 말인지 사슴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세계화의 시대에, 이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에서 말과 사슴의 구분은 지조를 지킨다고 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하거나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비장한 자세도,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시대착오적 레토릭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은 기본적인 것, 공과 사의 구별(公私有別)에서 출발하는 분별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규율의 대상과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펴보아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근 정부의 메르스 대책 관계자는 삼성병원이 충분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삼성서울병원의 감염에 대해 자율적인 관리에 맡겨 놓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다보니 삼성병원이 뚫렸는지, 국가가 뚫렸는지 삼성병원과장과 국회의원이 논박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국가가 삼성병원에 맡겨놓고 삼성병원이 뚫렸으면, 삼성병원도 뚫리고 국가도 뚫린 것 아닌가?
의료계에서는 국내에서 전혀 경험이 없던 메르스 진단을 처음 해 낸 삼성병원의 실력은 어쨌든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공중보건은 공공부문이 맡을 일이다. 하지만 윈-윈 할 수 있는 관련 공무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음으로써 삼성병원의 쾌거도 빛이 바래고 말았다. 학생의 실력이 아무리 특출하다고 해도 시험감독이나 출제, 채점까지 그 학생에게 맡기면 그게 어디 선생인가?
공공부문 내부를 보자. 지록위마는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 즉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 답이 나오게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전문성 없는 행정관료가 득세할 발판이 여기서 마련된다. 공공부문이 전문가와 자체적 역량을 갖추지 않는다면 민간부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는 전문성과 권한 즉 판단의 능력과 권한이 균형을 잃으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처에서도 그렇듯이. 그때도 '야간 실종자 수색 밤샘 실시'라는 보도자료와 달리 실은 그날 투입요원들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 아니었나. 이번에도 연일 정부에서 누군가 나와 발표를 해봐야 결국 삼성에 맡겨 놓고 헛바퀴만 돌리고 있었던 것 아닌가.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탈규제니 민영화니 하는 친기업적 정책방향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배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재규제(re-regulation), 협력규제(co-regulation)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통관료라면 회전문 인사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과의 분별, 공공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규제지식과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규제의 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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