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의 한국경제를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에 서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상의는 24일 "메르스 사태로 인한 내수 위축에다 글로벌 경기침체, 엔저영향으로 수출까지 감소하며 상반기 성장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성장 경로상 정상궤도 진입도 늦어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상의는 이에 따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불황을 조기에 차단하고 하반기 경제제도약을 위해서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할 필요가 있으며 개별소비세 완화와 문화접대비 특례한도 확대 등이 시급하다고 요구했다. 상의는 정부의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 이런 내용의 3대 부문 10개 경제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메르스 불황타개 등 10대 과제 제언=상의는 먼저 메르스 불황 조기차단을 위해 기존 대책에 추가로 부가가치세 납부 유예, 피해업종 세무조사 유예 등을 건의하고 메르스로 인해 연기된 행사, 소비활동 등이 하반기에 되살아날 수 있도록 개별소비세 완화, 문화접대비 특례범위 및 한도 확대 등을 요구했다. 위축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국관광에 대한 대대적인 프로모션 시행과 면세품 세관신고 및 환급절차 간소화와 같은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특히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낙후된 의료산업 등 서비스산업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 허용, 의료호텔업 설치기준 완화, 의료관광 저해규제 개선 등을 요청했다.
규제개혁과 통상임금 및 임금ㆍ고용제도 개선을 담은 노동개혁,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조속한 입법을 주문하고 기업구조조정 제도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올해 말 만료 예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상시화해 줄 것을 건의했다.
◆"컨틴전시플랜 수립" 이례적 주문=상의는 이번 메르스 사태와 같은 보건ㆍ안전 등 리스크와 미국 금리인상, 중국경제 둔화, 원화강세, 유가불안정 등 경제위험 요인을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 수립도 주문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관련해서는 "하반기 우리 경제는 내수활성화를 위한 추경 편성과 조기집행이 필요하다"면서 "경기 위축이 더 심화되기 전에 정부가 시장에 확고한 긍정적 신호를 주고 경제심리가 안정될 수 있도록 충분한 규모의 추경이 편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봉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고 미끄러운 경사면에 서 있는 상황과 같은데 아이젠을 활용해서 하방리스크를 줄이고 차근차근 올라서는 정책대응이 중요한 시기"라며 "불확실성에 대한 경기대응력을 높이고 성장잠재력 확충과 근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갑 닫히고 수출도 휘청=상의가 대정부 건의문을 제출한 것은 메르스 여파로 인한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맞기 때문이다. 중기청이 이달 실시한 현장점검에서 중기 10곳 중 7곳(71.5%)이 메르스로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53.7%)은 실제 경영상 피해를 봤다. 단체활동과 외식자제로 학원과 서비스업, 음식업 매출은 메르스 전보다 30% 이상, 전통시장 매출액은 40% 이상 줄었다. 가뭄에 채솟값이 치솟고 공공요금까지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맏형이던 수출도 휘청이고 있다. 세계 교역이 둔화된 데다 저유가로 수출단가가 하락하고 엔화ㆍ유로화 약세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올 1~5월 누적으로 5.6% 감소한 상태다.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 둔화, 원화강세, 유가 불안정 등 경제위험 요인도 여전하다.
상의가 이례적으로 정부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 수립을 주문한 것은 대내외 위험요인에 대해 경제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최대고비… 해넘기면 정치일정 수두룩=전문가들은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대규모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 구조개혁, 가계부채 등과 관련해 전반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수 결손을 보전하고 3% 성장률 달성을 위해 총 22조원의 추경이 시급하다"면서 "메르스 공포가 언제 잦아들지 모르고 불안 심리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현 상황에서 이번 추경은 메르스 대응뿐만 아니라 경기 부양의 효과까지 거두는 규모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계 관계자는"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하반기 중 경제 재도약의 기회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대로가면 한국 경제가 경사면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애쓰려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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