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대내외 불안요인이 이렇게 많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일이 나열하다 보니 A4용지 한 장이 부족할 정도였다."
대한상공회의소 정책자문단의 한 민간전문가는 24일 상의가 발표한 대정부 정책과제 제언문 작성과정에서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상의가 이날 '3대 부문 10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고 했지만 세부과제를 추려도 대략 50여개가 넘는다. 새 정부 출범이나 경제부총리 취임 직후에 내놓는 '새 정부(새 경제부총리)에 바란다'의 수준이다. 경제계의 건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메르스에 가뭄, 물가…지갑 닫힌다=정부와 경제계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불황을 조기에 극복하자고 외치고 있지만 실물경기는 최악의 상황이다. 중기청이 이달 실시한 현장점검에서 중기 10곳 중 7곳(71.5%)이 메르스로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했고 절반 이상(53.7%)은 실제 경영상 피해를 봤다. 단체활동과 외식자제로 학원과 서비스업, 음식업 매출은 메르스 전보다 30% 이상, 전통시장 매출액은 40% 이상 줄었다.
가뭄에 채솟값이 치솟고 공공요금까지 오르고 있다. 배추 1포기 값이 1년 전보다 80% 가까이 올랐고, 양배추와 대파도 2배 안팎으로 올랐다. 양파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수급조절 지침상 '경계' 경보까지 내려진 상태다. 서울의 지하철과 버스요금이 27일부터 200원과 150원씩 오르고 광주와 강릉, 안산시 등에선 상하수도 요금을 최대 40% 올리거나 인상 계획을 검토 중이다. 지표상 물가는 0%대라지만 체감물가는 뛰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압박하고 있다.
◆수출도 휘청…엔저·美 금리인상 악재러시= 수출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세계 교역이 둔화된 데다 저유가로 수출단가가 하락하고 엔화ㆍ유로화 약세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올 1~5월 누적으로 5.6% 감소한 상태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수출액은 5551억달러로 지난해보다 3.1%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제 둔화, 원화강세, 유가 불안정 등 경제위험 요인도 여전하다. 상의가 이례적으로 정부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 수립을 주문한 것은 대내외 위험요인에 대해 경제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세계 자본 흐름에 변화를 초래해 신흥국시장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의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가장 큰 수출시장인 중국의 성장둔화는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최대고비… 해넘기면 정치일정 수두룩=전문가들은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대규모 추경을 통한 경기부양, 구조개혁, 가계부채 등과 관련해 전반적인 대응책을 마련해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수 결손을 보전하고 3% 성장률 달성을 위해 총 22조원의 추경이 시급하다"면서 "메르스 공포가 언제 잦아들지 모르고 불안 심리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현 상황에서 이번 추경은 메르스 대응뿐만 아니라 경기 부양의 효과까지 거두는 규모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계 관계자는"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하반기 중 경제 재도약의 기회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대로가면 한국 경제가 경사면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애쓰려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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