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무관 슬럼프 사랑으로 극복 '여유만만', 주 무기는 '송곳 아이언'과 '클러치 퍼팅'
[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사일런트 어새신(Silent Assassin)'.
'골프여제' 박인비(27ㆍKB금융그룹)의 별명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조용한 암살자'다. 좀처럼 플레이 도중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올 시즌 첫 승을 일궈낸 지난 3월 싱가포르 센토사골프장 세라퐁코스(파72)에서 끝난 HSBC위민스챔피언스 우승이 대표적이다. 리디아 고(뉴질랜드)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등 그야말로 '빅3'가 챔피언 조로 편성됐고, 루이스는 경기가 안 풀리자 클럽까지 집어 던지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박인비는 그러나 2언더파, 첫날부터 선두를 독주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완성했다. 그것도 단 1개의 보기도 없는 '72홀 노보기 플레이'라는 진기록을 곁들였다. "우승 경쟁 상대가 난폭한 행동을 보이면 오히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시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가 제자리걸음을 걸어 더욱 대조가 됐다. 박인비가 '철갑 멘털'이라는 아이콘을 앞세워 LPGA투어를 지배하고 있다.
▲ 사랑으로 극복한 슬럼프= 박인비가 바로 2008년 미국의 '내셔털타이틀' US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그것도 최연소우승(19세11개월)을 일궈내 주목받은 선수다. 하지만 이후 4년간 무관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2009년에는 20여개 대회에 등판해 3분 1이나 '컷 오프'됐을 정도다. 이렇다 할 부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답답했다.
해법은 당시 약혼자 남기협(34)씨의 애정이었다. 임진한골프아카데미에서 동문수학하다 사랑이 싹 텄고, 박인비의 월드투어에 매니저 겸 스윙코치로 동행하고 있다. 박인비는 마음의 안정은 물론 스윙교정까지 완성해 2012년 2승을 수확하며 부활 모드에 돌입했고, 2013년에는 LPGA투어 역사상 63년 만의 메이저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시즌 6승을 쓸어 담았다.
박인비 역시 "나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그가 있어 다시 골프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슬럼프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기복이 심했던 4년의 세월이 (나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며 "모든 샷과 퍼팅이 안정되면서 흔들림이 없다는 게 더욱 만족스럽다"고 자신감을 곁들였다.
▲ 우승 동력은 일관성= 지난 4년간 14승을 수확한 동력은 당연히 평균타수 1위(69.553타)의 일관성이다. 드라이브 샷 평균 비거리는 250야드(83위)로 하위권이지만 LPGA투어 5위(74.9%)의 '컴퓨터 아이언 샷'을 주 무기로 삼고 있다. 여기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마법의 숏게임을 가미했고, 결정적인 순간 빛을 발하는 '클러치 퍼팅'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1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해리슨 웨스트체스터골프장(파73)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PMG위민스PGA챔피언십(총상금 35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는 실제 1라운드 17번홀(파4) 이후 56개 홀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18개를 잡았다. "메이저에서 사흘 동안 단 1개의 보기가 없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히 퍼팅이 잘 됐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퍼팅이 다소 기복이 심해 숙제로 등장했지만 3승, 올해도 메이저 우승을 포함해 3승을 수확했다는 점에 비추어 '박인비만의 행복한 고민'이다. 이번 우승으로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격침시키고 세계랭킹 1위와 상금랭킹 1위, 다승 선두 등을 접수해 개인타이틀 '싹쓸이'까지 가능한 시점이다.
"올해 최대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ANA(나비스코)에서 이미 우승컵을 수집해 3개 메이저 퍼즐을 맞췄고, 7월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정조준했다. 2013년 '메이저 4연승'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했던 무대다. 이 대회 또는 2013년 메이저로 승격된 9월 에비앙챔피언십 가운데 1승만 추가하면 한국인 첫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새 역사를 창조한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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