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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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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차이나타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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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차이나타운2

한준희감독의 ‘차이나타운’(2014)은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일종의 짬뽕영화이다. 최근 한국 영화의 ‘잔혹사(史)’를 두루 버무려 맛을 낸 미덕을 지녔다. 가장 많은 소스가 들어간 것은 장준환 감독의 ‘화이’(2013)다. 주인공 일영이 화이의 여자 버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부모와 생년일시를 알 수 없는 고아가 범죄집단에 의해 폭력로봇처럼 키워져서, 그 집단 전체를 흔드는 교란자가 되고 결국 권력을 뒤엎는 강자로 진화하는 뼈대가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비정한 로봇인간이 순수하고 평범한 인간에게 흔들려 삶을 바꾸게 되는 점은, 임상윤 감독의 ‘회사원’(2012)을 빼다 박았다. 장기매매 모티프는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2010년 이정범감독의 ‘아저씨’, 그리고 2013년 김홍선감독의 ‘공모자들’의 궤적을 쫓고 있다. 중국과의 연결 고리는 2001년 영화 ‘파이란’(송해성감독)의 주민등록 위조의 추억과 2010년 ‘황해’(나홍진 감독)의 피범벅의 기억을 담보로 잡고 있다.


‘차이나타운’이 그런 짬뽕의 혐의들 가운데서도 개성적인 경쟁력을 지니는 점을 말하라면, 김혜수와 김고은의 혼신의 연기로 골조를 이룬, 여성 주체의 폭력 스토리라는 점이다. 거기에 장기매매의 현장은 영화 내내 역하다 할 만큼 비렸고, 무차별의 살육이나 아동학대는 대체 이 영화가 무엇을 원하는지 혼돈스러울 만큼 거침 없었다. 김혜수의 잔혹한 변신 포스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관객으로선 공허한 일이 아닌가.

[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차이나타운3


나는 이 영화를 몇 개의 모티프로 나눠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살모(殺母, matricide)이다.


살모사라는 뱀이 있다. 어미를 물어죽이는 뱀인 것처럼 들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뱀은 파충류이지만 알을 체내에서 부화해 새끼를 낳는데, 뱀으로서는 활동성이 가장 떨어지는 6월에 출산을 한다. 출산하고 나면 모체는 축 처져 있고 새끼들은 이미 꿈틀거리며 그 주위에서 활동을 하기에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엔 마치 새끼가 어미를 죽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어미 살모사가 굳이 이런 시기를 택해 새끼를 낳는 까닭은, 자신은 힘겹지만 새끼들이 태어나 활동하기엔 온도가 적당하고 또 숨을 곳과 먹이가 많아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 한다. 자식은 살모일지 몰라도, 어미는 살자(殺子)가 아니라 보자(保子)인 셈이다.


‘차이나타운’의 일영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지구상에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주민등록 부재의 무적자(無籍者)이다. 그런 존재의 뿌리가 없는 ‘깨끗한 특징’이 범죄자 집단에겐 긴요하다. 영화 ‘화이’의 아빠는 자신을 유괴한 범죄자 5명이었고, ‘일영’의 엄마는 지하철 10번(그래서 ‘일영’이다) 보관함에 버려져 노숙자와 함께 있던 아이를 돈 주고 사들인, 차이나타운의 인신매매범 여두목이다. 왜 엄마를 죽이는가. 양육의 나쁜 목적이나 학대 때문은 아니다. 범죄 기계로 키우고자 하는 계획이, 인간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조물주의 계획과 충돌하면서 심각한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엄마(김혜수) 또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살모(殺母)를 하여 독립했다는 점이다. 일영이 엄마를 죽였을 때 엄마가 준비해놓았던 일영의 주민등록은, 이 지상의 무적자에서 유적자로 입사(入社)식 하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살모사의 입사식이나 외디푸스의 인식 성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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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차이나타운5


둘째 장기밀매의 문제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영화를 투영한다. 아내가 장기매매에 희생되는 영화 ‘공모자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파이란’의 국적을 넘어선 헐벗고 아름다운 순정은, ‘황해’와 ‘차이나타운’으로 넘어오면서 범죄의 고리로 잔혹한 진화를 한다. 특히 ‘차이나타운’은 장기 밀매 방면에 있어서는 하나의 정점을 이룬다 할 만하다. 살아있는 인간의 장기를 꺼내 거래하는 악마적인 범죄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강력한 현실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관중의 공포감을 키우기 위해 손쉽게 기댈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어울릴 것이다. 살인이 장기매매와 결합되면서, 인간의 가치는 한층 사물(事物)의 견적과 동일시되고 살육 또한 가책이나 망설임 같은 최소한의 인간적 온기를 완전히 걷어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값이 안구나 콩팥, 간과 같은 생물학적인 부품들로 매겨지면서 정신적 가치나 존재감 따위는 증발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 시대 이 나라의 관객이 이같은 인간 모멸(신체 모멸을 포함한 정신 모멸)을 왜 견뎌야 하며, 부단하게 이런 현장 속으로 왜 불려나와야 하는지 의문이 생겨난다. 대체 왜 우리는 왜 장기밀매의 구역질 나는 비린내 속으로 호출되며 노출되는가. 세상의 얼러트(alert)인가. 구역질하면서도 더 자극적이고 더 엽기적인 것을 찾는 이중적 심리를 파고드는 상업적인 계략인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린 정말 더욱 간과 콩팥과 눈알 따위로 이루어진 장기(臟器)인간의 가치관에 현실적으로 동의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장기를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신체의 해체는, 존재에 대해 지녀온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몸에 얹혀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의 사회적 근거를 이루는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사회적 사망에 이르는 것과, 존재적 근거를 이루는 신체가 산산이 해체되어 생물적 부재(시신조차도 없는)에 이르는 것의 병치는, 끔찍하지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시대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며, 그 존재의 나날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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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알바시네]54. 영화 ‘차이나타운’과 잔혹인간의 공식 차이나타운7


셋째,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폭력과 살육으로 잘 길들여져온 일영이, 칼을 품고 빚을 받으러 간 석현(박보검)에게서 느낀 실낱같은 감정이 이 영화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인 엔진이다. 석현의 아버지는 채무를 갚기 위해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고, 석현은 음식점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석현은 사는 일이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긍정적이며 낙관적이다. 그리고 일영에게 기탄없는 친절과 배려를 보여준다. 석현은 인간의 어떤 전형성(典型性)을 지닌다. 부자로 태어나 살이의 걱정 없이 살아가며 착하게 사는 인간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때묻지 않고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는 보통인간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일영에게는 이런 노력을 해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는 범죄로 기획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석현은 하나의 꿈이었고 자기의 경계 저쪽에 있는 삶의 빛같은 것이었다. 칼을 들고 가서 만나기 시작한 남자가, 자신의 삶에 칼을 들이대는 인식교정자가 되어버렸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그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묻는 질문에 일영은 대답한다. “그냥, 편안했어요.” 일영에게 세상의 모든 관계는 긴장이었고 삶의 모든 양상은 살육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너머에 있는 존재, 그게 석현이었다. 엄마는 주의를 준다. “나는 네가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아. 너는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존재야.” 성장이란, 성적인 인식들이 빚어내는, 다른 행동들의 시작을 의미한다. 기계로 자라난 아이가 인간으로 성장할 때 그 내적인 충격은 더 치명적이고 더 긴급하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로 보이고 싶어져서, 원피스를 입는 그 행동 속에 숨은, 일영의 성장은 그 범죄조직에서는 불필요한 ‘인간성의 발현’이다. 석현을 향해 생겨난 섬광같은 그 마음(우린 이걸 사랑이라고도 부른다)이야 말로, 이 영화가 모노톤과 핏빛의 이중주 속에서 피워올리는 극적인 선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짧고 허무했으며, 그 사랑을 둘러싼 갈등과 결과들은 지루할 만큼 장황하고 상투적이었다. 하지만 장기 더미로 해체되며 죽어간 석현의 눈빛과 그를 죽인 모두를 죽인 뒤 차이나타운의 여주(女主)로 들어앉는 살모사 일영의 잔상은 잊기 어렵다. 인천 붉은 거리를 찰나처럼 살다간 기구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내게 기억될 것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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