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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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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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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작을 알리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한 움큼의 달러라는 뜻)’가 나왔을 때, 미국은 낯설고 새로운 영웅에 열광했다. 나른한 눈매에 고양이 얼굴을 한 사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존 웨인이나 제임스 스튜어트, 헨리 폰다, 혹은 게리 쿠퍼와는 뭔가 달랐다. 그는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총을 뽑거나 완력을 행사하는 굿맨이 아니라, 그냥 탐욕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비정한 총잡이였다. 이름조차 없는 무명자(無名者)인 주인공은 정정당당함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두 가문 사이에서 이간질과 뇌물수수 등 부도덕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비열한 사내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내를 통해 서부를 새롭게 들여봐야 했고, 황폐하고 참담한 황야를 맨눈으로 만나야 했다. 사막을 흐르던 휘파람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황야의 무법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들어낸 서부극이다. 주연은 원래 제임스 코번을 하기로 했었으나 개런티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몸값이 싼 신인을 택했는데 그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그를 택한 건 아니다. 그에게서 세르지오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서부극의 영웅상인 ‘역동적인 무기력함’을 발견했다. 클린트에게는 인간의 어둡고 왜곡된 내면이 그 특유의 무표정 뒤에 숨어있는 듯 했고 강하면서도 드라이한 위트가 있었다. 이것이 당시 미국에서 먹힌 까닭은, 1950년대 전쟁을 치른 뒤 무기력감에 빠져있던 대중들이 시니컬하면서도 지적이며, 굳이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강하고 질긴 히어로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의의 굿맨이기를 거부한, 관념의 파괴자였다.


이런 이미지를 강화시킨 것이 ‘더티 해리(1971)’ 시리즈였다. 그가 연기한, 경찰같지 않은 경찰의(고독하면서도 지독한) 사적인 응징은 당시 백인 중산층의 억눌린 울분을 길어올려 해소해줌으로써 열광을 얻어냈다. 공권력에서 일탈하여 악당보다 더 악당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이 삐딱한 영웅은 교과서적 정의에 대한 통렬한 심문이었다.

2010년 이후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7세로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된 그는 1980년부터 30년간 이 질문을 중심으로 한 강의를 해왔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명강의의 내용들을 추려 만든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정의신드롬은 한국에도 건너와 경이로운 출판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냈고 또한 사회적 반향을 키웠다. 미국의 두뇌 중심부에서 터져나온 ‘정의’에 관한 논의는, 세계의 정의를 이끌어간다고 믿어온 이 나라 나름의 모색과 고민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또한 이 화두를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3년에 사망한 크리스 카일이란 인물을 통해, 샌델의 질문을 버퍼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 크리스 카일의 스토리를 담은 영화가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이다. 크리스는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씰’의 전설로 불리는 저격수로, 공식적으로 160명,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255명의 적을 사살은 미 최다 저격기록 보유자이다. 그는 이라크전쟁에 4번 파병되었고 약 1000일간 전투에 참여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2km 가까운 거리에서 적을 사살한 명사수였다. 그는 전역후 전쟁트라우마 스트레스를 앓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동일한 병을 앓는 장애군인들을 돌보며 생활하다가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에디 루스에게 죽음을 당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저 비운의 저격수 영웅에게서 오래전 자기의 냄새를 맡았다.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속에서 카일(브래들리 쿠퍼, 영화 속 인물과 영화 밖 인물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주연캐릭터에 빙의를 한 명연기였다)은 첫 저격 임무를 맡은 곳에서 수류탄을 들고 달려오는 아랍소년을 사살한다. 결혼후 임신한 아내를 두고 전쟁터에 왔던 카일이 이라크의 소년과 그 어머니를 총으로 쏴죽였다. 그러면서 그는 욕설을 퍼부으며 중얼거린다. “저들은 악마니까...” 그때 옆에 있던 동료가 농담을 던진다. “아마 저들도 너를 악마라고 부를 걸?”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카일의 아버지는 어린 두 아들을 앞에 놓고 이런 얘기를 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타입의 인간만이 존재한단다. 첫째는 양처럼 무력하고 멍청한 존재, 둘째는 늑대처럼 힘을 가졌으며 야비하게 약자를 뜯어먹는 존재, 셋째 양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양치는 개가 그것이지. 너희들은 뭐가 되어야 되겠느냐?” 그러면서 양치는 개의 역할을 하라고 주문한다. 이것이 말하자면 카일의 정의론(論)의 골격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내가 당기지 않으면 아군이 당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군을 더 많이 살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는 미국식의 애국주의 신념이 카일의 말 속에 묵직하게 흐른다. 그렇다면 그의 허망한 죽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뼈아픈 사족의 질문을 영화 속에 덧달아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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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설적인 명사수의 활약상과 영웅적 투혼을 아로새기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황야의 무법자(1964)와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는 정확하게 50년이란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영화이다. 앞의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아 그의 성가를 세계적으로 떨치기 시작했고, 뒤의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미국 서부의 황야는 이라크 사막의 도시로 바뀌었고, 엄청나게 빠르게 총 뽑는 솜씨를 지닌 무명총잡이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죽일 수 있는 최고의 저격수로 바뀌었다. 그러나 카일 또한 텍사스의 카우보이 출신이다. 무명은 비열하고 탐욕스러웠지만 어쩐지 매력있는 영웅이었는데, 카일은 과격하지만 정상적이며 애국적인 신념을 지녔다는 점이 다르다. 황야의 무법자는 오직 돈을 따라 움직였지만,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동료애와 조국의 긍지로 움직였다.


이 50년 사이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잠깐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살펴보자. 1930년에 태어난 그의 유년은 힘겨웠다. 철강노동자였으나 공황으로 백수가 된 아버지와 IBM공장서 일하던 어머니 밑에서 그는 알바몬스터였다. 산림청에서 통나무베기, 산불끄기 알바를 했고 고졸이후에는 경호원, 제지소 벌목꾼, 제철소 용광로작업꾼, 항공사 정비원, 주유소 주유원, 건초 작업부를 전전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스물 한 살 때 시애틀대 음대에 응시를 해서 합격했으나 입학 직전에 징병되어 몬테레이의 포트 오드에서 수영교관과 교육영화 영사기사 일을 했다. 이 때 그는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는 사고를 겪기도 했는데, 5km를 헤엄쳐나와 살았다고 한다. 이런 강인한 생명력이 그의 기질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군에서 그는 배우들을 알게 되고, 그 인연으로 1954년에 카메라테스트를 받았다. 10년 뒤에 그는 ‘황야의 무법자’에 캐스팅된다.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황야의 무법자는 ‘정의로운 영웅’을 파괴한 영화였고, 미국의 시각이 아닌 이탈리아(유럽)의 관점에서 바라본 ‘서부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낭만으로 채색되거나 가공된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까지 황폐한, 날것의 현실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에서 다만 ‘연기’를 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문제의식을 인생 내내 견지해가는 사람이 되었다.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극의 공식을 파괴하고 그 영웅의 종언을 선언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걸프전시대의 미국을 심문하는, 그의 발언이기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총잡이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사람이지만, 총잡이의 타겟에 놓인 존재가 겪는 고통을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2006년에 만든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그런 각성을 보여준 결정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꽂는 군인들(Raising the flag on Iwo Jima)'라는 사진 한 장을 토대로 만들어낸 ’아버지의 깃발‘은 미국적인 애국과 그것에 대한 허무감을 다룬 스토리였고, 그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다가 알게된 일본군 사령관 하타미치 구리바야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낸 영화가 ’이오지마에서 생긴 일‘이이다. 이 영화는, 같은 전쟁을 일본군과 근접한 카메라로 들여다보고 일본군측의 내면으로 접근해서 풀어나간다. 두 영화를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쟁이야 말로 인간이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만 이해하여 선악을 규정해버리는 무서운 가치의 폭력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듯 하다. 일본군의 눈으로 보면 미군이 악마였다는 것을 진심으로 읽어낼 수 있는 이성의 사이즈를 지닌 미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그것을 우리의 문제로 치환해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그런 감정이입으로 혼란스러움을 경험하는 ‘군인’이다. 이것은 실제 카일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창조한 인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전쟁터이긴 하지만 맨처음 쏘아죽인 대상이 아이였다는 점이 클린트를 움직였을 것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였던 무스타파와 생사를 걸고 싸워야 했던 모티프 또한 감독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무스타파는 이라크전쟁에 참여했지만 시리아인이었다. 그의 집에는 그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만삭의 아내와 찍은 사진이 있었고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사진도 있었다. 전장에서의 그는 아랍의 전쟁 광기에 앞장선 싸움기계였지만 그 이면에는 카일과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만삭의 아내를 둔 건 카일과 똑같지 않은가. 그러나 무스타파의 총에 동료를 잃은 뒤 카일은 마침내 그를 쏘아 죽인다.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는 1986년 북캘리포니아 카멜시의 단체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3년간 정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보수성을 띤 공화당 소속의 정치인이었지만, 공화당 매파를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선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무모한 중동전쟁을 일으킨 부시에 대해 자기 파괴 행위이며 가장 멍청한 행동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부시의 중동전쟁은 1조 달러 이상을 날린 소모전이었고 미군 사망자만 1만명을 넘긴 참극이었다. 무엇보다 이 전쟁이 비판을 받았던 건, 전쟁의 명분과 목적을 잃어버린 채 오기로 밀어붙여 고통을 늘린 점이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그런 우행(愚行)을 겨눈 클린트의 총부리인지도 모른다. 한 전쟁 영웅의 허무한 죽음에서,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정의의 허구와 그것이 남기는 깊은 통증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카일의 수염을 그대로 빌려온 듯한 브래들리 쿠퍼의 구레나룻과 수염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했던 비정한 무표정을 표현해 내는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싶다. 눈이 너무 따뜻해서일까. 그걸 가리려는 듯 브래들리는 자주 고글글래스를 썼다. 클린트는 자신의 무표정을 재즈연주자 레스터 영에게서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레스트 영은 테너색소폰을 연주해 재즈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명인이다. 그는 연주를 할 때 가슴이 터질 듯 쿵쿵거리는 순간에도 표정에는 냉정을 유지하는 무심한 주법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토록 삼엄한 내면관리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들의 복잡하고 치열한 내면의 고압선을 이뤄온 게 아닐까.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등장을 아카데미상이 그토록 주목한 까닭은, 현재 미국의 자의식과 고뇌를 이토록 진지하게 붙잡으려 하는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미국과 중동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피와 눈물은 얼룩 위에 다시 얼룩으로 흘러내리는 중이다. 경제는 죽었다 살아났고, 도전자들이 이미 세계 톱리더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꼬리무는 전쟁의 족쇄는 너무 오랫동안 미국을 절뚝거리게 해왔다. 미국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며 정의의 담지자도 아니다. 정의가 적의 소탕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영웅이 죽인 사냥감의 숫자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걸 뒤늦게나마 깨달아가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로 그런 상처에 소금을 제대로 뿌린 셈이다.


[빈섬의 알바시네]51.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황야의 무법자 실제 저격수인물인 크리스 카일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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