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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48.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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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48.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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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독 데이 애프터눈(Dog Day Afternoon). 1975년작. 한국서 개봉할 때 영화의 제목은 '뜨거운 오후'였는데, 저 인상적인 영어 제목이 살아남아, 한국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작품을 낳게 된다. 1972년 8월22일에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존 보이토윅즈와 살바토레 나투랄레 강도사건)을 라이프잡지에서 접한 뒤 영화 소재로 삼았다 한다. 그런데 영화 말미에 이날 체포된 쏘니가 연방 교도소에 20년째 복역중이라고 밝히고 있어, 92년에 상영되었어야 영화를 미리 당겨서 개봉한 게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독 데이는 한여름 더운 날을 가리키는데, 마침 우리의 복(伏)날과 닿아있어 기묘하게 통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개를 먹는 날은 물론 아니고 찌는듯이 덥다는 의미로 쓰인다. 로마시대엔 시리우스별이 빛나는 날이 가장 더운 여름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시리우스별이 견성(犬星, 개를 가리키는 별)이라 '독데이(Dog Day)',라는 말이 생겨났다. '개같은 날'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해에서 기인한 속된 표현이지만, 여름날의 찍찍 늘어지는 기분과 푹푹 내리쬐는 폭염을 표현하는데는 그보다 적절한 말이 없다 싶기도 하다. 아마도 루멧에게, 8월이라는 사건 시점은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 강도로 나오는 배우는, 알 파치노(쏘니 와트직)과 존 카잘(샐)이다. 실명의 존은 쏘니가 되고 살바토레는 샐이 되었다. 또 한명의 강도가 있었는데, 스티브라는 친구다. 이 친구는 심약하여 범행 초반에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은행문을 열고 스스로 나가버린다. 이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강도라고는 하지만 허술해보이고 인간적이며 예의바르며 또 선량하다. 은행 금고엔 이미 대부분의 돈이 이송되고 없었고 푼돈을 긁는 와중에 경찰이 어느새 눈치를 채고 은행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않았고 감옥에 가고 싶지도 않았기에,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담판을 벌이기로 한다.

[빈섬의 알바시네]48.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그 가운데, 인질들은 은행강도가 비록 범행은 시작했지만 바탕이 선량한 보통사람인 것을 눈치챈다. 총은 비록 무섭지만 그 총을 든 사람이 이미 무섭지 않다. 그들 앞에서 전화도 태연하게 걸고 춤도 추고 총을 받아 군대 제식훈련을 흉내내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현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굳이 먼저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무엇일까. 인질이 강도에 매료되는 현상. 일종이 스톡홀름 증후군인데, 루멧은 덥고 질척거리는 현실보다 그것을 뚫고 나아가려는 범죄의 박력과 스릴이 대중을 사로잡는 현상을 들여다보는 듯 하다. 경찰과 협상을 벌이는 쏘니는 어느새 길거리 대중의 영웅이 되어 있었고 미디어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은행강도를 수많은 병력으로도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보는 게 옳을까. 인질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찰의 신중함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미 미디어에 노출되고 대중적인 인물이 된 '범죄자'이기에 미디어와 카메라가 불법적이거나 무모한 경찰행동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질범죄 현장이야 말로 미디어와 대중관심의 최대먹이라는 것을, 범죄자 쏘니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동성애 애인도 부르고 아내도 부르는 협상을 해낸다. 물론 그런 협상 자체가 한계를 지닌 것이었기에 이미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다. 샐은 외국 어디로 가고 싶느냐는 쏘니의 질문에 미국에 있는 와이오밍주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를 한번도 타보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들의 탈주가 현실적인 출구이긴 어차피 어려웠다.


[빈섬의 알바시네]48.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개같은 날과 시드니 루멧


에어컨도 꺼진 은행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강도들과, 가슴팍 옷섶을 밀어내리며 낄낄거리는 인질들, 더운 날 길거리에서 총을 겨냥하며 늘어서 있는 경찰들의 찜통 얼굴들은 살벌하고 긴장된 대치라기 보다는, 그 살벌과 긴장마저 허물어뜨리는 독데이의 기승 아래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어쩌면 저 무방비의 무더위 아래서 인간은 잠정적이나마 선량하고 게으르며 낙천적인 본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시드니 루멧은 저 찜통더위 속의 인질강도 속에서 무슨 혐의를 찾아내고 싶었던 걸까. 죽은 감독이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니, 본 관객이 있다면 내게 귀띔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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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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