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위, 최근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놓고 중립성 논란
-각 상임위 마다 법안 제출되면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 '사전 법안 검토'
-검토보고서는 의원들 심의에 기초가 됨, 법안 통과의 숨은 '산파'
-검토보고서가 법안 심의에 주는 영향 막강해 중립성 논란도
[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국회의원 8년차인데 이런 식의 편향된 검토보고 요약서는 처음 봅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국회 전문위원이 정부 하청기관입니까. 찬반 의견이 있으니까 충분한 검토를 하자는 거죠."(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요 주택 정책 100여건이 계류돼 있는 국회 교통위원회가 최근 한 장의 '검토보고서'로 인해 파행을 겪었다. 의원들의 법안 심의에 기초가 되는 전문위원들의 검토보고서에 대해 중립성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전월세 대란 해결을 위해 민간기업의 기업형 임대주택을 활성화시키는 '뉴스테이법'이 소위에 제출됐는데,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의 요약을 발표하며 부정적인 의견만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천편일색 부정적 의견만 전부 이야기를 했다"며 "이게 어떻게 전문위원실에서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의 입장을 담아 얘기할 수 있냐"고 반발했고 야당 의원들은 "국회 전문위원과 수석이 정부나 여당의 대행자 역할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며 "발언이 오히려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는 입법기관으로 법안을 심의하고 통과시킨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각 상임위원회에 배치돼 법안들의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열명 남짓한 여야 의원들이 법안심사소위에 들어가 하루 동안 심의해야할 법안은 최소 수십 건이다. 법안 처리의 운명을 쥔 의원들도 각 안건에 구체적인 내용을 세세하게 알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때 의원들이 올바른 심의를 위해 도움을 주는 이들이 바로 각 상임위별 배치된 법률 전문가들이다.
국회의 각 상임위에는 사무처 소속인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 전문위원(2급), 입법심의관(3∼4급), 입법조사관(3∼4급) 등이 배치돼 있다. 이들은 업무는 '사전 법안 검토'다. 법안이 상임위에 제출되면 내용을 분석해 찬성과 반대 의견, 수정 필요사항을 작성해 소위에 올린다. 의원들의 심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전에 분석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다. 법안 통과의 숨은 '산파'다.
검토 보고서가 심의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해당 법안에 대한 상세한 요약 뿐만 아니라 긍정과 부정의 견해까지 곁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안심사소위는 법안 심의에 앞서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가 먼저 발표된다. 상임위의 대체적인 진행 순서는 검토 보고서 중심으로 전문위원 설명을 듣고, 정부 측 의견이 이어진 후 의원들의 질의 및 안건 처리로 넘어간다. 법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원들의 경우 보고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은 검토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검토보고서가 인쇄화되고 유인물화되면 이게 결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법안 처리의 산파는 '입법의 숨은 권력'로 비쳐지기도 한다. 보고서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만큼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늘 뒤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문위원들은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검토보고서는 법안심사소위에 제출되기 전 각 상임위원장의 확인을 거친다. 대체적으로 형식적인 통과 의례 과정을 거치지만, 상임위원장이 관심있는 법안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또한 전문위원들은 각 상임위 소관 기관들의 로비에도 노출돼 있다. 검토보고서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해당 법안과 이해관계에 있는 기관들이 전문위원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전문위원이 법안과 이해관계에 놓인 소관 기관들과 소위에 오기 전 이미 조율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며 "의사일정도 정해서 의원실에 통보해 주는 경우도 있다. 상임위에 가려진 진짜 권력은 그들이다"고 말했다.
국회 소속 전문가들은 법안 심의 뿐만 아니라 예산안 처리 때도 주목을 받는다. 국회의 가장 큰 행사인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도 분석 보고서는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산안과 결산안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국회 예산정책처는 재작년 정부의 '2014년도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를 낸 후 홍역을 치뤘다. 관련 보고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행복주택, 셋째 아이 이상 대학등록금 지원, DMZ 세계평화공원 등에 대한 예산의 문제점이 포함됐었다. 정부 예산안에 대해 국회 소속 전문가들이 부정적 견해를 내놓자 관련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당은 "의원 보좌기관이 보도자료를 배포해 혼란스럽게 한다"며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당의 반발로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예산안 부처별 분석 보고서의 요약본을 따로 보도자료로 배포하지 않았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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