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의한 풍진동 제어 연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준 이하로 낮춰
20~30층마다 피난안전구역 설치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2011년 6월4일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 지하에 5300여대 레미콘 차량이 무려 32시간 동안 3만2000㎥의 콘크리트를 쏟아부었다. 이를 위해 레미콘 회사 8곳의 장비와 인력이 총동원됐고 펌프 23대가 쉬지 않고 가동했다. 123층, 높이 555m의 제2롯데월드 기초공사는 세계에서 4번째 규모의 콘크리트 공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시작됐다. 74만t에 달하는 육중한 건축물 바닥을 만들기 위한 공사로 '안전'을 위한 첫 단계이기도 했다.
초고층 건물은 이전보다 더 높게 뻗어 올라가고 있다. 진일보한 건축설계 기술과 새로운 고강도 재료 덕분에 건물 전체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외관도 날씬해졌다. 대신 높이로 인해 강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에 따른 각종 위험 요소에 노출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초고층 건축물의 등장으로 더욱 높은 수준의 건물안전 기술이 필요해진 이유다.
높은 건물은 그만큼 화재나 붕괴와 같은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도 훨씬 어렵다. 건물에서 탈출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소방장비와 구조인력이 도달하기는 매우 어렵다. 긴 계단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연기를 빠르게 위쪽으로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초고층 건물에는 별도의 '피난 안전구역'이 마련된다. 건물 중간중간에 피난안전구역을 배치하고 화재가 발생하면 이곳으로 우선 대피한 뒤 다음 매뉴얼에 따라 2단계 피난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건축법에서는 30층 이상 건축물의 경우 이 같은 별도의 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까지 완공된 최고층 빌딩인 인천 송도국제도시 '동북아무역센터'에도 이 같은 사고ㆍ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이 곳곳에 적용됐다. 위성항법장치(GPS) 센서를 장착해 바람이나 지진 등에 따라 건물의 진동, 변위, 변형 등을 실시간으로 계측할 수 있게 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 건축물이 흔들리는지 여부를 감지해 내기 위한 목적이다.
건물 30층과 60층에는 각각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돼 있다. 화재 등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이곳으로 신속하게 대피해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다. 지하 1층에 별도의 통합방재실이 설치돼 전력, 조명, CCTV, 출입통제 등을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24시간 안전담당자에게 긴급연락이 전달되도록 한 시스템도 눈에 띈다.
현재 공사 중인 제2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역시 20층마다 총 5개의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될 예정이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15분 이내에 가까운 피난안전구역의 대피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각각 피난계단이나 피난용 승강기를 이용, 외부로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 16만개, 화재감지기 3만개가 설치되고 정전 시에는 비상발전기를 통해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도록 할 방침이다.
앞서 2012년에는 GS건설이 국내 최초로 초고층 건물 화재 시나리오를 개발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화재 발생빈도와 영향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소방방재청이 고시한 화재 시나리오 중 몇 가지를 선택한 방재설계와 달리 빈도수에 맞춰 시나리오를 선별해 대응하도록 했다.
특히 건물 내 거주자들의 나이와 성별을 감안, 화재안전시설을 설치하고 피난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영향을 주는 계단이나 실내공간 배치 등의 요인을 고려했다. 기계적으로 법적 규정에 맞는 숫자의 화재 방재시설이나 피난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달리 피난시간 등을 감안한 셈이다. GS건설은 이 초고층 건물 화재 시나리오 기술을 서울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설계에 적용하기도 했다.
높게 지은 만큼 강풍과 내진에 대한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제2 롯데월드는 최대풍속 초속 70m의 강풍과 진도 7 이상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진ㆍ내풍 장치가 설계됐다.
대우건설은 바람에 의한 풍진동 제어 기술까지 연구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지진을 제어하기 위해 설치되는 강재를 이용한 기존 댐퍼공법에 고감쇠고무를 함께 적용한 방식으로 슈퍼 태풍의 피해까지 예방할 수 있다.
인천 청라에서 가장 높은 59층 규모의 '청라더샵레이크파크'도 횡력저항 구조 시스템을 적용, 초속 33m의 강풍과 진도 8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지어졌다. 이는 기본풍속인 초속 30m보다 높은 수치로 순간 최대풍속 50~60m 이상에도 저항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시대복 포스코건설 건축사업본부 부사장은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건축 기술 뿐 아니라 안전 기술도 앞서가야 발전이 가능해진다"며 "더 높고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한 건설사들의 연구와 투자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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