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주인 잃은 지갑을 발견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①가까운 파출소(또는 경비실)에 맡긴다. ②모른 체 그냥 간다. ③지갑 속 현금 액수에 따라 1 또는 2를 정한다. 여기 1을 선택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나이가 있다.
어느날 출근길에 그는 지갑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근처 경비실에 맡겼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지갑 주인이 지갑 속에 있던 현금 130만원이 사라졌다고 주장하니 조사받으러 출석하라는 것이다. 아니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선행을 베푼 선랑한 시민을 어떻게 도둑으로 모느냐, 혹시 그 여자(지갑 주인)가 꽃뱀이 아니냐, 방방 뛰며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수차례의 경찰 조사에 그와 그녀와 경찰의 삼자대면까지 악몽같은 날들이 이어졌지만 누명을 벗지 못했다. 그는 소송을 해서라도 억울함을 풀겠다며 '이 방면'에서 난다긴다 하는 변호사를 찾아갔고 변호사는 승소를 자신했다. 하지만 변호사 선임료에 성공 보수까지 이래저래 1500만원 정도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세상이 험하고 세태가 각박해서일까. 선행(善行)이 미담으로 칭찬받기는커녕 해코지당하기 일쑤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봇짐을 내놓으란다. 방귀 뀐 놈이 되레 성을 낸다. 상처받은 선행. 성석제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서로 연대보증을 서는 바람에 한 가구가 파산되면 보증을 선 사람 역시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동네 전체가 야반도주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아는 처지에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결과는 의절이요, 파탄이다. 어느 개그맨도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심신이 병들었다지 않은가.
선행이 손해보는 야박한 세상, 그러니 어설픈 의협심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하나 싶다가도, 가슴 저린 선행에는 절로 숙연해진다.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가 가슴에 묻은 아들을 차마 잊지 못해 '사랑한다'고 보낸 카카오톡 문자에, 그 번호로 개통한 누군가가 '전 잘 지내고 있어요. 아빠도 행복하게 잘 지내세요' 하고 답을 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의정부 화재 사고 당시 로프를 이용해 여러 사람을 구한 '동아줄 의인' 뉴스에는 '그래도 우리 사회가 염치도 있고 온정이 살아 있구나' 싶은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선행이 살맛 나는 세상을 가꾸는구나 깨닫는다. 그러니 작은 선행에 잊지 말고 박수를 쳐주자. 그 박수도 작은 선행임을 기억하자.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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