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1598년 오늘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한 날로 기록돼 있습니다. 아울러 3살 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릴적부터 친구이자 후견이었던 서애 유성룡이 북인들의 시기로 파직당한 날이기도 합니다. 묘한 운명이지요.
알려진 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과 벌인 마지막 싸움인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노량해전은 정유재란으로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병사 소식에 철군하면서 벌인 마지막 전투 입니다.
이순신은 진린(陳璘)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과 함께 왜군 500여 척이 몰려 있는 노량 앞바다로 쳐들어가 400여척의 적선을 격파합니다. 그러나 후퇴하는 마지막 잔당을 추격하다 적의 유탄에 맞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은 이 때 죽지 않고 경북 봉화 춘양의 도심촌이라는 곳에 15년간 살았다는 '은둔설'이 전해옵니다. 왜란 중에 이미 선조에 의해 죽음을 당할 뻔 했던 이순신과 이를 잘 아는 유성룡은 전사(戰死)를 위장해 도심촌에 숨어 살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유성룡의 친형인 유운룡이 난리 중에 어머님을 모시고 은둔한 마을이어서 이야기가 제법 그럴 듯 하게 연결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순신은 사망후 20일이 지난 12월 10일 고향 아산으로 옮겨졌고, 나라에서 장례비까지 지원했음에도 80일 지난 다음 장례가 치러졌다고 합니다. 또 16년이 지난 1614년 이장이 됩니다. 이 때문에 이순신이 실제로 사망한 것은 봉화 도심촌에서 1614년이 아닌가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도심촌에는 '값옷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 마을에는 이순신이 살았다는 말이 전해온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설’이긴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선조 임금은 이순신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설’은 그럴 듯 합니다.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