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이라는 게 바로 저런 거구나, 무릎을 탁 쳤다. 속세의 번민과 번뇌를 내려놓은 히말라야 노승의 깨달음 같은,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에 대한 절대적 실천 같은 아득한 표정. '제1회 멍 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9살 꼬마의 얼굴 사진을 보는 순간 '아~ 이 아이 정말 해탈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눈은 떴지만 보지 않고 귀는 열었지만 듣지 않는 적멸(寂滅)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의 풍모가 장난 아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멍 때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대회까지 여는지 사실은 뜨악했다. 지난 27일 낮 12시~오후 3시 서울광장 잔디밭에서 열린 대회에 남녀노소 50여명이 참여했고 좀 더 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참가자들의 넋놓은 표정이나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우승 트로피를 보고는 피식 웃었지만 "현대인에게는 뇌의 휴식이 절실하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 뒷덜미를 낚아챘다.
디지털 시대, 우리 뇌는 점점 혹사당하고 있다. 24시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시시각각 판단해야 하는 0 또는 1의 선택들. 뇌는 쉬고 싶지만 욕망은 또 다른 목소리를 낸다. 배우 최민식이 출연해 화제를 낳은 할리우드 영화 '루시'나 그 루시가 모티브로 삼은 '리미트리스'는 10%밖에 사용 못하는 인간의 뇌를 100%까지 끌어올린다는,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스크린에 담았다. 물론 인간이 뇌를 10%밖에 사용 못한다는 근거는 과학적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를 먹어 치우는 뇌가 그 용량의 90% 이상을 놀린다는 것은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피로 사회는 과연 '뇌의 과소비'가 문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들의 피로'를 위로했고, '느림의 미학'이나 '슬로우시티' 현상은 그 같은 과소비에 대한 저항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빳빳하게 굳었던 정신을 이완시키면 알파파, 세타파 따위가 분비되면서 창의력과 면역력이 상승한다. 칸트와 뉴턴이 산책으로 머리를 비우고 워런 버핏이 멍하니 천장을 바로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도 그렇다. 채우려면 먼저 비우고, 달리려면 잠시 멈춰야 한다. 계속 잡아당기고 있는 활 시위는 결국 느슨해진다. 그러니 아주 잠시라도 사고(思考)를 멈추고 마음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자. '멍 때리기'를 가열차게 허(許)하자.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