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거뜬했다. 체중을 줄인 효과가 나는 듯했다.
금요일 저녁식사 전 몸무게를 71.5㎏으로, 평소보다 3㎏ 정도 감량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탄수화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로 피자 두 조각에 이어 우동과 라면을 하나씩 끓여 먹었다. 다음 날 저녁까지 네 끼를 양껏 먹어 체중을 2㎏ 불렸다.
왜 마라톤을 앞두고 탄수화물을 보충하나. 비유하면 탄수화물은 휘발유고 지방은 고체 연료다. 지방은 탄수화물에 비해 연소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지방은 탄수화물이 있어야만 연소될 수 있다. 말하자면 지방은 탄수화물의 불꽃 속에서만 연소된다.
뛰다가 탄수화물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배가 고파진다. 휘발유 탱크가 바닥을 드러냈다는 신호다. 연료탱크가 바닥난 차는 달리지 못한다. 인체도 마찬가지다. 그 상태에서는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다. 주최 측에서 일정 구간마다 제공하는 간식을 계속 먹게 된다. 지난 일요일 대회 때는 약식으로나마 탄수화물을 근육과 간에 충전해 둔 덕에 풀코스를 달리는 내내 기력이 바닥나진 않았다.
날씨는 더웠다. 마라톤에 적당한 온도는 10도 전후라고 한다. 지난 일요일 춘천은 최저 기온이 10도였다가 낮에는 20도까지 올라갔다. 더위에 약한 체질인 나는 땀을 많이 흘렸고, 5㎞마다 마련된 물과 이온음료를 계속 마셨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풀코스의 절반에 이르기까지는 가볍게 뛰었지만 서서히 피로가 쌓였다. 풀코스 완주 4시간 페이스메이커를 보냈다. 후반에는 한참 서서 쉬기를 반복했다.
날씨를 탓할 처지는 아니었다. 대회를 앞둔 연습에서 하프 코스를 뛰는 것도 힘에 부쳤다. 연습 때 하프 기록이 개인기록에 비해 10분 못 미쳤다. '춘천 대회는 절반 남짓만 훈련 삼아 뛰고 2주일 뒤 서울 대회에 맞춰 준비하자'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러나 대회 당일이 되자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기 어려웠다.
이변은 없었다. 지난 10여년 동안 달린 30번에 가까운 풀코스 기록 중 가장 저조한 기록으로 들어왔다. 4시간39분. 지난해 같은 대회보다 42분 밀렸다.
마라톤은 정직하다. 풀코스 42.195㎞를 달리는 몸은 훈련 때보다 월등한 결과를 보이지 못한다. 이것이 마라톤에서 배우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라는 걸 다시금 몸으로 깨달았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