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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19. 영화 '해바라기'와 스무 살 첫사랑(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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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알바시네]19. 영화 '해바라기'와 스무 살 첫사랑(上) 영화 '해바라기'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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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해바라기'를 본 것은 1982년 대구 중앙로의 음악감상실 '포그니'에서였다.

그 가을, 청송 주왕산에 대학 졸업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대구에서 차를 갈아탈 일이 있어 대구역 부근에서 내렸다. 시간이 남아 중앙로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작은 옷가게에 들어갔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젊은 여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포그니'라는 음악감상실이 이 부근에 있나요? 별로 기대하지 않고 한 질문이었는데, 그녀는 반색을 하며 대답한다. "그럼요. 내가 자주 가는 곳인데...그런데, 대구 사람 아닌가 봐요? 대구의 젊은 사람들은 다 아는, 유명한 곳인데..." "아. 예. 대구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들은 기억이 있어서... 어디로 가면 되는지 좀..." 그녀는 볼펜을 꺼내서 약도까지 그려가며 친절히 설명을 한다. 메모지에 그려지는 길과 건물들을 눈부신듯 바라보면서 나는 눈자위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졌다. 분별없고 성급한 내 마음이 아름답고 가엾은 나의 사랑을 차버렸구나. 석달 전 여름날 이곳에 와서 아무리 찾아도 없던 그곳은 좁은 골목을 돌아가는 길에 있었다. 나는 '포그니'라는 담요 브랜드같은 음악실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지라, 하루 종일 찾아 헤매면서도 의심을 품고 있었다.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에, 그게 나타날 리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 한 분에게 물었으나 공교롭게도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곳이 내가 지나쳐간 작은 골목 뒤에 숨어있었다니...마음이 급해졌다. 쥐었던 옷을 내려놓고 뛰쳐나오듯 가게를 나왔다. 손에 꼭 쥔 메모지가 바람에 팔락거리는 걸 느꼈다. 오후 3시. 아마도 이탈리아의 옛 건물들 사이의 골목같이 마주 선 간판들이 서로 붙을 듯 좁은 길 저쪽에, '음악감상실 포그니'라고 씌어진 글씨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이마를 쳤다. 아아, 미안해. 영아.


한낮이었지만 벽에 검은 타르를 칠한 건물이 인접해 있어서 어둑컴컴했다. 붉은 천과 노란 천으로 둥글게 감싼 들창에는 작은 화분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있었다. 낮에도 희끔한 등이 켜진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나무계단이라 내 발자국소리가 쿵쿵거린다. 검은 나무 격자 속에 알록달록한 꽃무늬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오는 무거운 문을 밀었다. 100석은 못되는 것 같지만, 꽤 넓은 홀이었다. 푹신한 의자들이 극장처럼 한 방향으로 놓여있고 문과 맞은 편에 벽 한 면의 3분의 2쯤을 쓰고있는 널찍하고 환한 공간의 디제이 부쓰가 보인다. 한 귀퉁이를 기역자로 돌면서 벽을 꽉 채운 LP판의 종이집들이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건물 벽마다 검은 스펀지 느낌의 천으로 감싼 거대한 스피커들, 부쓰 앞쪽에 진공관이 보이는 고색창연한 레코드 플레이어가 세 대나 있었다. 그 앞에 다소 왜소한 느낌의 남자DJ 하나가 스포츠 머리에 큰 헤드폰을 끼고는 음악을 틀고 있었다. 객석에는 세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는데 나를 포함하면 여덟 명쯤 되었다. 한낮인데도 대개 눈을 감고 조는 듯한 모습이었다. DJ는 무슨 농담을 던져놓고 무리 중 한쪽의 두 명과 눈을 맞추며 낄낄거린다. 흑장미 빛깔의 두꺼운 벨벳 천으로 된 커튼의 삿갓 틈새에서 빛이 흘러들어와 창 쪽의 시트 하나에 파이 한쪽같은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그냥 거기에 죽치고 앉아버렸다. 일행 중 한 명과 만나, 고향인 경주에 갈 예정이었으나 지금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빈섬의 알바시네]19. 영화 '해바라기'와 스무 살 첫사랑(上) 영화 '해바라기'의 한장면


2. DJ부쓰 한쪽에는 꽤 큰 TV모니터 하나가 있었는데, 거기선 영화 '해바라기'가 끝도 없이 방영되고 있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막도 없는 영화가 울고 웃으며 장식처럼 거기 흐르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한 여인에 관해 탐문을 해야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저 부쓰에 그녀가 와서 앉을 때까지, 운명을 지켜보기로 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와서 일하는 곳을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엄습했다. 차라리 이곳의 붉은 의자 하나가 되어, 아니면 벨벳 커튼이 되어, 벽에 붙은 드라이플라워같은 것이 되어, 내내 그녀를 지켜보고 싶어졌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여독이 있어서였는지 모른다. 나른함을 느끼며 구겨진 포즈로 누워 무성영화 '해바라기'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음악감상실에서 이 영화를 고른 것은 소피아 로렌의 무표정한 연기와 광활한 해바라기밭을 보여주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감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1969년이었고 전세계에 개봉된 건 그 이듬해인 1970년이었다. 그런데 이 멜로영화는 이 나라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는다. 이념에 대한 편식을 강요하던 시절, 빨간 나라의 종주국인 소련 여인이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였고 소련의 길거리가 그대로 노출되는 불온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소련을 거지나라로 선전을 했는데, 영화에서는 지하철이 나오고 아파트가 보이는 등 당시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형편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념적인 문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정부가 나서 국민의 눈을 가렸던,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수난을 당한 영화였다. 영화는 박정권이 무너진 뒤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신군부의 '문화 해금(解禁)' 정책을 타고 1980년 무렵에 지각 개봉한다. 음악감상실에서조차도 '해바라기'는 이념 탄압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전파하면서 자유를 구가하는 포즈를 담은, 당시의 '키치'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날 내내 그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어디가 시작인지 몰라서였는지, 주의가 산만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냥 두 여자가 나오고 아주 경망스러워보이는 한 사내가 나와 서로 웃고 우는 모습들만 기억난다. 전쟁이 나오고 기차가 나오고 해바라기밭이 나왔던 기억만 난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보고 있었는게 아니라, 그냥 영아를 생각하며, 영아를 기다리며, 두렵고 착잡한 기분이 되어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해바라기 꽃 한 송이를 클로즈업할 때(이게 아마 끝부분일 것이다. 영화를 앞뒤 끊어보았는지라 시작과 끝이 붙어있었다.) 나는 장미 한 송이를 떠올렸다. 한 송이 해바라기가 멀어지면서 서서이 해바라기밭이 나타날 때 나는 장미꽃이 다발로 피어있던, 대구시 동구 검사동 1031번지의 녹색 철대문을 떠올렸다. 장미 줄기 하나가 손짓하는 것처럼 내려온 자리에 있던 두 개의 초인종을 생각한다. 하나는 전선이 떨어져 너덜너덜하고 하나는 임시로 다시 단 듯 모빌장난감처럼 매달린 플라스틱 벨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장미 한송이로 시작하여 저 다발장미로 사랑을 보냈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영화 속의 해바라기는 무슨 의미일까. 크로아티아 평원의 해바라기밭 아래에는 수많은 이탈리아인 전사자들과 러시아인 포로들의 주검이 묻혀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해바라기는 그 주검들을 먹고 피어났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전쟁을 섭취한 결과라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하나의 태양인 사내 안토니오를 향해서 도는 두 여인이 해바라기라는 의미일까. 인간이란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듯 하지만, 전쟁이나 운명 따위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선택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부조리의 문제를 해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해바라기로 설정한 것일까. 모르겠다. 모든 꽃은 사랑의 은유이며, 꽃이 질 무렵에는 사랑도 진다는 괴로운 진리를 담고 있지 않던가.


[빈섬의 알바시네]19. 영화 '해바라기'와 스무 살 첫사랑(上) 영화 '해바라기'의 한장면



3. 군인 안토니오(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나폴리에서 그 고장의 여인 지오바나(소피아 노렌)와 사랑에 빠진다. 건조한 해변에서 뒹구는 소피아 로렌을 보면, 나는 이상하게도 창녀처럼 느껴진다.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어쩐지 그렇다. 이탈리아인들이 지닌 천성적인 적극성이나 쾌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래 위에서 그들은 얼싸안고 애무를 한다. 그런데 키스를 하다가 안토니오는 여인의 오른쪽 귀걸이를 삼킨다. 시골처녀는 "그거 금이라서 비싼 건데..."하면서 아까워하다가, 켁켁거리는 사내를 보고는 바닷물이라도 마셔서 넘기라고 말해준다. "으, 짜." 안토니오가 투덜거리자 "바닷물이 당연히 짜죠."하며 지오바나가 웃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덧붙인다. "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예요." 바다에선 노을이 곱다. 안토니오는 해변에 올라와 있는 보트들 사이로 지오바나를 데려간다.


그제서야 대강 서로 신원 파악을 한다. 안토니오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전기공을 했던 사람이다. 지오바나는 이발사의 딸인데 아버지가 돌아가고 언니 집에서 붙어사는 의류디자이너이다. 그때 불쑥 그녀가 묻는다. "귀대는 언제죠?" "모레. 그런 말 하지말자." 그러면서 안토니오는 그녀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잡고 눕힌다. 이 장면은 얼마나 야하게 보였던가. 이때 지오바니는 남아있는 왼쪽 귀고리를 얼른 떼어놓으며 눕는다. 그것마저 삼킬까봐 그랬으리라. 이 장면은 또 어찌나 귀엽고 재미있는지...


안토니오는 슬슬 귀대하기 싫어진다. 그는 이번에 부대에 들어가면 아프리카로 가게 되어 있다. 그때 지오바나가 말한다. "그렇게 가기 싫으면 나와 결혼해요. 그러면 12일 휴가를 받을 수 있잖아요?" 희한한 제안이다. 그때 사내는 손사래를 친다. "내가 당신이랑?" 이렇게 묻자 그녀는 대답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딴 사람하고라도 하면 되잖아요?" 사내는 말한다. "내 나이 벌써 32살이야. 하려면 벌써 했지." "하자는 여자가 없었구나?" "아니. 여자는 많았지. 그녀들이 나를 교회로 끌고 들어가는 순간 도망쳤지. 결혼은 내 인생에 없어." 그때 지오바나는 소리친다. "아프리카로 가서 전갈에나 물려죽어버려라." 그때 안토니오의 말. "전갈이 결혼보다는 나아." 이렇게 토닥거리던 두 사람이, 다음 장면에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다. 사랑은 급하게 시작되고 삶은 작은 핑계를 만들기 위해 깊은 운명의 골을 판다.



1980년 여름은 뒤숭숭했다. 더웠지만 이상하게 냉기가 흘렀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라는 긴 제목의 노래가 나온 건 그해 늦봄이었을 것이다. 나의 시험 기간에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일을 소홀히 했다고 입주해있던 집에서 나를 쫓아낼 것을 검토하던 시절이었다. 막막한 기분으로 잠깐 졸고 있었을 때 라디오에서 산울림의 노래가 나왔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단조로운 저음으로 마치 옆에 와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르는 쓸쓸한 노래였다. 나는 김창완의 목소리에 묻은 어색하고 서투른 느낌같은 게 좋다. 아이처럼 천진하면서도 삶의 일정한 체념이 드리운, 기묘한 이지(理智)가 꾸밈없는 가락 속에 슬프게 묻어났다. 얼마 뒤 나는 거의 공짜에 가까운 대학 부근의 싸구려 쪽방으로 이사를 했고, TV에선 군인 하나가 나와 광주 일대를 붉은 색으로 표시하면서 계엄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 모든 대학의 무기한 휴학이 시작됐다. 나는 경주로 와서 도서관과 포장마차를 오가는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까닭없이 히스테리컬해졌고, 먼저 실직 상태로 집에 와 있던 형과 또하나 추가된 식충이였던 나는, 뭔가 일하는 시늉이라도 내기 위해 집 뒤에 있던 창고를 정리하고 거기다가 우사(牛舍)를 짓는 계획을 세웠다. 설계와 건축 전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빼면 집안에서 노는 노동력 두 사람이 자질구레한 일 전부를 감당해야 하는, 만만찮은 공사였다. 특히 체력은 약골이고 그런 솜씨는 젬병인 나로서는, 참으로 버티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 1980년 8월13일은 그렇게 왔다.



[빈섬의 알바시네]19. 영화 '해바라기'와 스무 살 첫사랑(上) 영화 '해바라기'의 한장면



4. 이탈리아인이 지니는 민족적 기질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지오바나와 안토니오의 결합은 처음부터 불안해보였다. 여가 12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결혼을 하다니? 그것도 남자의 마음 한 구석에는 결혼에 대한 편견같은 게 여전히 있었을 것이다. 그 결혼식에 안토니오의 어머니는 참석하지 않는다. 아들이 돈 때문에 결혼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지오바나는 말한다. "나보다도 더 가난하면서..."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안토니오는 군대가 싫어서 결혼을 했다. 아프리카의 전갈보다 마누라가 더 무섭다고 말했던 그이지만, 귀대를 다만 12일이라도 더 미루고 싶을 정도로 전쟁을 싫어했다. 이 점은, '자전거 도둑'이라는 사회의식 단단한 문제작을 초기에 내놓았던 비토리오 데 시카의 문제의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전쟁과 대면하는 것을 유예하기 위해 결혼까지 했던 이 사내는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이없는 혼란을 겪게 되지 않는가.


이들의 12일은 어떠했던가. 우리가 흔히 꿈꾸는 '사랑의 일락' 그대로이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방 안에 틀어박혀 아침도 저녁도 없이 사랑하고 잠자고 먹는 일이다. 그들은 행복했던가. 행복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다만 그 넘치는 행복의 창문에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시간이 있었다. 종소리가 울려 여인이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내리고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안토니오에게 묻는다. "오늘이 며칠이죠?" "몰라." "교회에 갔다오는가 봐요. 일요일인가. 아아, 누군가 결혼식을 했나봐요." 그때 안토니오가 벌떡 일어난다. "앗, 그건 내 전우야. 내가 꼭 가야하는 결혼식인데..." "하는 수 없죠, 뭐. 근데 저 친구도 휴가 때문에 결혼했을까요?" 그리고는 가만히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며 여자는 묻는다. "말해봐요. 당신은 정말 휴가 때문에 나와 결혼한 거예요?" 남자는 눈을 껌쩍거리면서 말한다. "아니야, 사랑하니까..." "거짓말, 당신은 귀대를 두려워했잖아요." 이때쯤 남자는 상황을 얼버무리려 다시 여자를 끌어안아 침대에 눕힌다. 시간은 또 지나간다. 여섯시였는데 다시 일어나보니 여섯시다. 안토니오는 "이 시계 고장난 것 아냐?"라고 쥐고 흔들어본다. 시간은 그렇게 큰 발자국으로 성큼성큼 지나간다.



돌이켜 보면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들인데도, 나는 그 우연에 들어있는 상징을 찾아내려 애썼다. 1980년 8월13일은 내 생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해의 양력 및 음력 날짜와 일치했다. 1961년의 음력 7월3일은 양력으로 8월13일이었는데 1980년도 그랬다. 하도 신기해서 조사를 해보니,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는 해가 순환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임을 알게됐다. 내가 태어난 날과 똑같은 날.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이 정교한 시계를 예비해놓을 것이라고 믿었다. 갑자기 운명론자가 된 듯 했다.


이날 나는 얼마전부터 알고지내던 김소혜를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고향마을의 앞집에 살던 동갑나기 여대생이, 갑작스런 휴교령으로 시골에 처박혀 폐인처럼 지내는 나를 구제하겠다며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우연하게 나온 생일 얘기 끝에 경주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귀빠진 기념 식사라도 하자고 소혜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매일매일 강도 높은 건축공사에 매달려있던 나는, 약속을 한 그 당일날 내게 몰린 일감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달려갔지만 한 시간 이상이나 늦어있었다. 공교롭게도 약속장소인 대왕극장(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다) 건너편에 있는 왕궁레스토랑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그날이 쉬는 날인 모양이었다. 이 친구는 아마도 길에 서서 오랫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이십 분을 넘어섰을 때 화가 치밀기 시작했을 것이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친구를 불러내어 차를 마시러 갔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혹시나 그때까지 남아있을까 싶어서 나는 그곳 주위를 한참 동안 돌아다녔다. 하늘은 찌푸려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흐린 도시에는 표정 없는 행인 몇 명이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생일날 이게 뭐람? 고개를 숙이며 그냥 걸었다.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황제다방? 낯선 이름이다. 이곳은 신라의 영광을 먹고사는 도시라 '대왕' '왕궁' '고궁' 따위의 이름이 많기는 하다. 그런데 '황제'라...내가 알기로는 신라에는 '황제'라는 호칭이 없었다. 당나라와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 '황제'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다방들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음악을 듣는 곳이었다. 클래식을 들려주는 다방이라는 암시를 이름에다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문득 혹시 이 친구가 여기 와 앉아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궁과 황제는 어쨌든 비슷한 뉘앙스가 있으니 내가 여기로 착각해 와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실낱같은 기대로 좁고 높은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널판을 이루는 나무가 얇아서인지 걸음마다 약간 삐걱이는 소리가 난다. 계단을 다 오른 다음 심호흡을 하고 문을 민다. 미지의 운명처럼 어둑한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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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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