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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돼지의 꿈,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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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돼지의 꿈, 도토리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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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속담에 '돼지는 도토리를 꿈꾸고 거위는 옥수수 꿈을 꾼다'는 말이 있다. 또 '암탉이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수수'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속담은 우리보다 더 낮은 단계로, 어린이부터 동물에 이르는 수준으로 내려가 우리가 꿈꾸는 내용은 욕구의 충족임을 주장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꿈의 해석 8장, 어린 시절의 꿈)


돼지는 도토리를 좋아한다. 돼지가 도토리 꿈을 꾼다는 건 인간의 상상이고, 그런 속담을 근거로 인용하는 것은 억지스럽지만.

돼지가 도토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말 도토리에 반영됐다. 최세진이 16세기에 펴낸 한자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는 도토리를 '돝의 밤'이라고 적었다. 돝은 돼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도토리의 원 말은 '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도토밤', '도톨암'을 거쳐 도토리로 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는 도토리를 돼지 사료로 썼다. 장 앙리 파브르는 곤충기에서 도토리를 거두는 광경을 이렇게 전한다. '어느날 마을에서 그 마을 소유 도토리를 수확한다는 북을 치면, 그 마을에서는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된다. 아버지는 장대로 가지를 치고, 어머니는 손이 닿는 도토리를 딴다.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걸 줍는다. 들쥐 어치 바구미, 그밖에 많은 동물의 기쁨거리가 된 다음에는 이 수확에서 비계가 얼마나 생길까를 계산하는 삶의 기쁨이 따른다.' (장 앙리 파브르ㆍ파브르곤충기7ㆍ현암사)


도토리 수확으로 비계가 얼마나 생길까 계산한다는 말은 돼지에게 먹일 요량으로 도토리를 수확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도토리로 묵을 해 먹어왔고, 유럽 사람들은 주로 돼지한테 먹인 뒤 돼지고기를 통해 그 영양을 섭취했다. 도토리를 먹여 돼지를 사육하는 양돈법은 여전히 활용된다. 스페인 요리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숙성ㆍ건조한 요리인데, 하몽 중에서 도토리를 먹여 기른 돼지의 뒷다리로 가공한 것을 하몽 이베리코라고 부른다. 하몽 이베리코는 일반 하몽보다 맛이 좋아 더 고가에 거래된다.


논밭에서 오곡이 영글고 산에서는 도토리가 굵어지고 있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의 열매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숲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돼지를 야산에서 방목해 가을이면 도토리를 먹도록 하면서 키우면 어떨까. 일정 기간이지만 돼지도 좋아할 게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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