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2007년말 원·달러환율은 929원이었다. 2001년 1290원이던 것이 7년 연속 떨어져 세자릿수가 됐다. 같은 기간 수출은 늘었다. 2002년 8%를 기록한 성장률은 꾸준히 올라 2007년 14%까지 갔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수치를 놓고 이렇게 해석했다. "원화강세에도 수출이 잘되니 우리 경제 참 장하다." 하지만 여기에 숨어있는 경제현상이 있다. 조선사를 중심으로 한 수출 대기업들이 이 시점에 원화강세를 예상해 '선물환매도'를 쳤고, 이것이 종래에 가서는 외환시장의 수급을 꼬이게 했다는 것이다.
2009년 출간된 <흐름을 꿰뚫어보는 경제독해>는 경제현상과 경제지표 사이에서 간과하기 쉬운 '원리'를 신선한 시각에서 풀어주는 책이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대출금리도 내린다는 식의 모두가 상식처럼 외우고 있는 통념이 아니다. 경제학교과서에서 배운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놓치기 쉬운 경제현상의 '빠진 고리'를 일러준다.
저자는 1장에서 외환시장과 자산시장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수출기업의 환헤지 문제부터 들여다보자. 2006년 조선사 A는 외국선사로부터 1억달러 수주를 받는다. 우리 돈으로 바꾸면 950억원이다. 배는 지금부터 만들지만 돈은 1년 후에 들어와 A사는 걱정이 앞선다. 환율은 더 떨어질 것 같다. 결국 '환헤지'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다. 미래에 들어올 1억달러를 지금 시점에서 파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A사의 선물환매도 계약을 맺은 은행도 '환헤지'를 해야 한다. 외채를 빌려, 외환 현물시장에 팔고 받은 원화를 기업과 가계에 빌려준다. 환헤지도 하고 수수료도 받는 셈이다. 1년이 지난다. 은행은 빌려준 950억원을 가계와 기업으로부터 돌려받는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원화대출시장에서 돌아오는 것이다. 1년 전 부동산시장에 풀린 유동성은 빠르게 사라지게 된다. 결국 수출기업의 선물환매도가 부동산시장을 들었다놨다하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처럼 소규모개방경제체제 하에서는 외환시장과 환율문제가 모든 경제현상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통화승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기준금리를 내려도 은행이 신용창조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신용이 경색돼 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막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 미국이 세계경제에 막대한 권력자로 부상하게 된 계기,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로마 네로 황제, 조선의 흥선대원군의 사례를 들어 제왕학의 핵심 비밀이 '화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능'이라고 지적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필력을 날리고, 그 글을 토대로 이 책을 엮었다. 그는 책에서 "경제란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경제 근본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지표들을 관참함으로써 최소한 반 발자욱 정도 먼저 변화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썼다.
<'흐름을 꿰뚫어보는 경제독해'/세일러 지음/위즈덤하우스 출간/값 1만5000원>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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