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회사에서 공기계를 직접 팔면 안 되나요?"
팬택의 한 임직원이 사내 인트라넷 토론마당에 올린 글이 투표를 거쳐 팬택 경영진에 정식으로 건의됐다. 이동통신사가 지난달부터 팬택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직접 단말기를 구입해 회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 보자는 내용이다. 이통사의 대리점·판매점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내 단말기의 유통 구조상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회사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직원들이 의지를 담아 제안한 내용이라 현실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16일 팬택 관계자는 "현재 해당 내용은 팬택의 직원 자치기구 주니어보드에서 정식으로 투표를 거쳐 결과가 경영진에게 전달된 상태"라며 "투표에 참여한 임직원의 93%가 이 제안을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직원들의 의지는 잘 전달됐겠으나 현실화되기까지는 여러 기술적인 문제들이 있어 실무진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은 지난달 이후 단말기를 한 대도 판매하지 못했다. 통상 소비자가 이통사를 통해 단말기를 구입하는 국내 시장 구조상 이통사가 팬택 제품을 구입해 주지 않으면 마땅한 판매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반이 지나는 동안 공장은 돌아갔고 생산은 적게나마 꾸준히 이뤄졌다. 이 기간 동안 약 50만~60만대로 알려져 있는 팬택의 한 달 생산능력의 절반만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현재까지 이론적으로 37만대 가량의 단말기가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통사들 역시 60만~70만대의 팬택 재고를 갖고 있다. 팬택 임직원들이 직접 판매를 시행할 경우 유통 과정에서의 마진을 뺀 가격에 판매하게 될 것이고 이는 이통사들이 보유한 팬택 단말기의 잠재수요를 빼앗아갈 가능성이 높다. 팬택이 결정에 앞서 기술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한 데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이통사의 동의 등이 포함돼 있다. 이통사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통사들이 조금이라도 꺼려한다면 직원들의 제안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현재 팬택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이통사를 비롯해 유통구조에 얽혀있는 이해관계자들이 팬택 직원들의 의지를 인정해준다고 하더라도 판매량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팬택 관계자는 "'100대 이상 팔겠다'는 직원들의 목소리는 의지를 담은 바람일뿐 아직 판매 가능 여부도 결정 나지 않은 상황이라 판매방법 등도 결정된 게 없다"며 "전사적인 동참이 이뤄지고, 1800명의 임직원이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단말기를 바꿔준다고 가정해도 회사의 자금상황을 크게 개선해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는 정도로만 봐달라는 설명이다.
한편 팬택은 현재 '플랜B'를 제안해 답보상태에 놓인 사태 해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팬택은 전날 이통사에 "1800억원 출자전환 대신 2년간 상환유예를 검토해달라"고 제안했다. 기존에 팬택 채권단이 제안한 1800억원 출자전환 참여 제안은 사실상 거절한 이통사들은 팬택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서는 검토는 해 볼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다만 채권단의 요청이 있을 경우라는 단서가 붙었다. 채권단 측 역시 "상환유예로 당장 닥친 팬택의 자금부족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며 "전향적 검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단 역시 팬택의 설득으로 이통사 측에서 제안해올 경우라는 전제를 붙여 향후 중재자의 역할이 국면 전환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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