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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두향, 피눈물 '가시리'를 부르다(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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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80)


[千日野話]두향, 피눈물 '가시리'를 부르다(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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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향은 이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단양의 일이 끝나면 나으리가 다시 나를 불러주리라. 자유로운 몸이 되어 그가 기거하는 곳에 가서 늙은 종이 되도록 그를 모시며 살리라. 이토록 사모하는 사람의 지척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오늘 비록 그를 보내지만, 그는 다시 돌아와 나를 안으며 사랑의 빈칸을 채워줄 것이다. 두향은 거문고를 들어 고려가요 '가시리'를 연주한다.


가시리 가시리이꼬. 바리고 가시리이꼬.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이꼬.

두향은 눈물 고인 눈으로 퇴계를 바라본다. 가셔야 하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벌써 가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왜 가시려 하는 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붙잡는 내가 그걸 들어서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물음은 두향 자신에게로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결정이 맞다. 그렇다고 그렇게 가십니까? 여기에는 당신의 이유를 묻는 게 아니라 아직 헤어질 수 없는 나의 이유를 살피라고 말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헤어지는 무렵엔 당황과 다급함이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지라 곰곰히 당신의 이유를 살피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대신 나를 말할 뿐이다. 당신이 그렇게 사랑한다 말했던, 곱고 귀엽다 말했던 그 나의 처지가 어떻게 되어갈지 돌아봐달라. 고개는 끄덕였지만, 마음은 정녕 그렇지 않음을 노래에 슬쩍 담았다.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어디 고려 여인의 심정만 그렇겠는가. 사내는 큰 것만 고려하고 전체에만 눈을 둘 뿐, 정작 눈앞에 있는 한 여인의 내면적 공황에는 둔감하지 않던가.


 
잡서와 두어리마라는 션하면 아니올셰라.
셜온님 보내옵노니 가시는듯 도셔오쇼서.


(소매를 붙)잡아서 내 곁에 두고 싶지만 서운하면 아니올세라. 당신이 가버리면 나는 살 수 없을 것을 안다. 그래도 당신이 간다니 어찌해야 하는가. 절망적인 결론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당신을 붙잡지 못한다. 내가 당신을 붙잡는 일은,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헤어짐이 괴롭다 하여 내가 당신의 삶과 선택에 보낸 전적인 지지를 철회할 수는 없다. 헤어짐이 내게 가당치 않은 것이라 하여 이전에 내가 당신에게 보냈던 그리움과 사랑을 덜어 내어 이날 당신을 붙잡는 완력으로 쓸 순 없단 얘기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며 나는 그저 내 있는 힘을 다해 사랑하고 또 사랑할 뿐인지라 붙잡고 싶어도 붙잡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션하면 아니올셰라.


서운하다라는 말이, 저렇게 어눌하면서도 애절하고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소릿값을 지녔구나. 션하다는 말에는 묘한 바람 소리가 감돈다. 사랑한다는 일이, 이 션함을 벗어나있는 것이 있었던가. 상대를 서운하지 않게 하는 일. 사랑이 이 뜻을 넘어선 적이 있었던가. 오로지 당신을 외롭지 않게 하고 서럽지 않게 하고 노엽지 않게 하고 우울하지 않게 하고 힘 빠지지 않게 하려는 모든 배려. 당신을 션하지 않게 하는 일. 두향에게 사랑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당신이 서운하지 않도록 하는 사랑은 천만번 사랑의 맹세와 허풍보다 더 넓고 깊고 아득하고 오래 울린다. 가시리는 그걸 말해준다. 이제 결딴이 나고 있는 사랑 앞에서조차도, 두향은 가늘게 읊조린다. 션하면 아니올셰라.


'가시는듯 도셔오쇼서'는 가시는 것도 당신의 뜻이고 돌아오는 것도 당신의 뜻이니 부디 당신의 뜻을 새롭게 가다듬어 나를 찾아오시라는 당부이다. 내 뜻에 붙잡혀 돌아오는 게 아니라, 당신의 뜻으로 돌아오라는 말이다. 당신의 마음이 한순간 바뀌어 가실 수도 있듯이 다시 그 마음이 변해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니 그것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이 결언은, 션하지 않게 님을 보내드리는 두향의 앙큼한 기대이며 또한 절절한 믿음의 힘이기도 하리라.


지금 그토록 고뇌하며 골몰하고 계신 단양군수의 직무를 끝내시면 나를 불러주시기를. 아마도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눈물을 흘리며 퉁기는 현금(玄琴)의 '가시리'를 이황은 눈을 감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실바람에도 꽃잎 뚝뚝 떨어지는 봄밤에, 두견새 피울음같은 노래가 흘렀다. <계속>


▶빈섬의 스토리텔링 '千日野話' 전체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 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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