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캐스터와 시사프로그램, 개그, 연기, MC 이 모든 분야를 섭렵한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방송인 박은지(31)다. 2005년 MBC 기상 캐스터로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렸던 박은지는 2012년 프리를 선언하고 연예계로 본격 진입했다. 출발 당시는 다소 우왕좌왕했다. 의욕은 넘쳤고 시간은 부족했다. 여기저기를 다니며 바쁘게 살았지만, 좀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힘들었다.
물론 소득도 있었다. 방송 활동의 모든 과정을 홀로 책임지며 자립심을 배웠고,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다름없는 연예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깡’과 기술을 조금씩 익혔다. 그랬던 그가 얼마전부터는 매일 오전 9시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배 방송인 이숙영이 17년간 지켜온 SBS 파워FM 107.7MHz ‘이숙영의 파워FM’ DJ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화창한 봄날 오후, 탐앤탐스에서 커피 한잔을 나누며 박은지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방송인으로서 조금씩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있는 느낌이에요.
프리랜서 선언 이후 저를 생각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직업이 없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제는 내 색깔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던 중 지난해 라디오 DJ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 때 제겐 정말 달콤한 제의였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답니다. 지금 와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많은 청취자들이 거부감을 드러냈어요. 그럴 때마다 솔직히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하고…. 나중에는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게 됐죠. 하지만 그런 고민들이 곧 무의미하단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어요. 나를 좋아하든 안하든 모두 안고가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진행하다 보니 지금은 반응도 좋고, 좋은 문자들도 많이 와요.
진행 도중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남편의 교통사고로 일곱 살배기 아이를 혼자 키우는 서른 세 살 여성 분과 전화 연결이 됐어요. 얘기를 이어가던 중에 그 여성 분이 “날씨가 맑을 때면 아이가 하늘에 대고 ‘아빠 안녕’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 정말 착하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없냐고 물어봤는데, 그 분이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앞으로도 하늘에 있는 아빠랑 엄마랑 모두 행복하게 잘 살자,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앞을 가렸어요. 이날 방송 후 위로문자가 2000개가 넘게 왔죠. 마치 제가 큰 네트워크 매개체가 된 느낌이었고, 라디오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방송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방송과 친근했어요. 저와 이종사촌인 (강)민영 언니와 형부(감우성)가 MBC 20기 공채 탤런트라서 방송이 멀다고 느껴지지 않았죠. 물론 그 때만 해도 제가 이 일을 하게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대학교(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님이 제가 항상 나서서 발표하니까 “너는 방송 쪽과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주시긴 했어요.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월드 미스 유니버시티 대회에 출전했는데 일이 정말 잘 맞았어요. 알게 모르게 제 생각은 일찌감치 이쪽 세계로 기울어 있었나 봐요.
형부 감우성은 어떤 도움을 주시나요?
형부는 제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조력자에요. 프리 선언을 하면서 염려와 걱정을 제일 많이 해줬죠. 아무래도 기상 캐스터라는 확고한 직업이 있는데 어려운 연예계 일을 한다니까 걱정이 됐던 거죠.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부터 기상 캐스터 시절과 달리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형부가 시적인 문자를 보내주세요. 기억에 남는 글은 ‘지금의 나는 과거에 그토록 꿈꾸던 미래다’였어요. 이 문구를 볼 때마다 없던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아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현재 출연중인 TV조선 ‘강적들’에는 입담 센 분들이 많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시사에 대해 모르지는 않지만 뚜렷한 정치색도 없었고, 방송에 나가서 말을 잘못할까봐 무서웠어요. 그런데 막상 출연하니까 모든 분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던 거친 모습과는 다르게 부드럽더라고요. 생각보다 다들 무척 온순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속으로 ‘내가 무섭다고 하니까 잘해주나?’라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하하. 처음에는 일회성으로 시작했는데 제가 출연하고 시청률이 올라 고정으로 들어갔어요. 물론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웃음) 지금은 양쪽 토론이 격해지면 제가 말리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면서요.
지금까지 연기는 특별출연처럼 느낌만 맛봤지만, 이제는 깊게 파고들고 싶어요. 당연히 내가 입던 옷이 아니기 때문에 맞춰나가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가장 해보고 싶은 배역은 악녀에요.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스타덤에 오르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단기간에 고삐 풀린 것처럼 올라가버리면 대중의 기대감에 비해 제가 보여줄 것이 없잖아요. 저는 길고 가늘게 연기 인생을 걷고 싶어요.
은지 씨를 보면 뭐든지 열심히 해요.
제가 SBS ‘도전 1000곡’에서 개그맨 조세호 씨와 함께 열심히 리액션을 했어요.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제작진이 좋게 보셨는지 ‘웃찾사’ 출연을 제안했어요. 저로서는 거절할 이유도 없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도 있어 흔쾌히 출연한다고 했죠. 이 때 아무리 비중이 작은 일이라도 노력한다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앞으로도 뭐든지 노력할거에요.
비슷한 맥락에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같아요.
저는 30대 초반까지는 제 색깔을 찾기 위한 모험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에요. 30대 중반이 된다면 저의 색깔이 조금이라도 나타나겠죠. 지금은 아프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누군가의 워너비가 될 수 있겠죠?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예계 생활의 롤 모델이 있다면요.
나이를 먹으면 김희애 선배님처럼 우아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어요. 지금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시절 얼마나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가늠이 가요. 그런데도 그런 거친 모습들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잖아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우아한 내공을 가지고,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도 김희애 선배님의 나이가 된다면 그렇게 보이고 싶어요.
올해도 벌써 4분의 1이 지났어요. 목표가 궁금하네요.
제가 연예계 발을 담그면서 제의가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다했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로그램을 8개나 했는데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너 이렇게 다 해도 괜찮아?’라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처음에는 팬들에게 얼굴을 많이 보이는 게 중요한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 그 때의 상황들을 밑거름으로 저와 맞는 프로그램도 찾았고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제 인생의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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