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김민진 차장
직장인 박씨는 최근 두 가지 일을 겼었다. 한가지는 본인이 법을 위반해 징벌(?)을 받았고, 또 한가지는 유명무실한 법 때문에 가장으로서 체면을 구긴 것은 물론, 신세한탄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경험을 했다.
'법과 원칙'이 금과옥조처럼 강조되는 나라 대한민국에 사는 박씨의 사연은 무얼까.
#서울시내에 거주하는 박씨는 강원도에 폭설이 내리던 지난 8일 가족들과 외출했다가 밤 늦게 귀가했다(이날은 낮부터 서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고, 대설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자택이 있는 골목 언덕을 오르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그는 평지인 인근 주택가 도로에 차를 세웠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인데다 많은 눈이 내리는 날씨에 별일이 있겠나 싶은 마음이 주차위반이라는 범법(?) 행위를 부추긴 것이다.
박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것은 주차위반 딱지와 벌금. 대한민국 주차딘속 공무원들의 법 집행 정신을 우습게 본 댓가랄까.
박씨는 "주차단속을 할 게 아니라 제설작업을 해야할 때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희박한 준법정신이 문제일까, 주차단속원과 제설작업을 하는 공무원이 다른 걸 몰랐던 게 화근일까.
#세입자(임차인) 박씨는 지난 주말 저녁식사를 하다가 집주인(임대인)의 전화를 받았다. 현재 2억원인 전세보증금을 5000만원 더 올려야겠으니 집을 비우던가,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내용을 통보받은 것이다.
박씨가 세들어 사는 집의 계약 기간은 이달 말까지이고, 박씨가 임대인의 통보를 받은 건 계약만료일을 2주 가량 앞둔 시점이다.
임대인의 통보는 내용상 '주택임대차보호법' 2개 조항을 위반한 것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시행령 제8조(차임 등 증액청구의 기준 등)에 따르면 '차임이나 보증금의 증액청구는 약정한 차임등의 20분의 1의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2억원인 보증금에서 5000만원을 더 올려달라는 것은 '20분의 5'(25%)를 증액한다는 것이니 이는 위법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계약의 갱신)는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다(문맥이 어법상 어색하지만 법 조항이 이렇다).
계약만료일이 2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임차인에게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했으니 법 조항으로 보자면 이 통보는 효력이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땅의 수백만 세입자 가구는 알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매 사안마다 후렴구처럼 등장하는 게 '법과 원칙'이다. 하지만 이쯤되면 대한민국은 무법천지가 아닌가.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대응"을 강조한다. 폭설이 내리는 한밤중 주차딱지를 떼는 심정으로 다른 곳에도 엄중한 법 집행을 해주면 안될까.
그렇다면 주차딱지를 뗀 후 집 주차장으로 옮기던 박씨의 차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언덕길에서 미끄러져 정비소 신세를 졌다고 한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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