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현장 4년만에 가보니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한강 르네상스' 두 번 했으면 아주 서울시 말아먹을 뻔 했다"
35년 동안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한 문모씨(69)는 양화대교를 지나면서 혀를 찼다. 2년반에 걸쳐 490억원을 들여 교각간의 간격을 넓혔지만 막대한 공사비도, 공사하느라 교통체증을 빚게 했던 것도 고스란히 '헛일'이 되고 만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양화대교 교각 확장 공사가 시작된 때로부터 4년이 지난 6일 오후 찾은 양화대교. 이 다리는 4년 전인 2010년 2월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이었던 '서해뱃길사업' 절차에 따라 크루즈선이 드나들도록 하기 위해 교각사이를 확장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서울 도심과 영등포·김포·경인고속도로를 연결하는 다리로 출퇴근길 이용자가 많은 다리지만 2년 8개월간 'ㄷ자' 형태로 변형돼 통행에 큰 불편을 빚었다. 애초에 책정됐던 415억원의 공사비는 더욱 늘어나 49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교각 폭이 42m에서 112m로 확장돼 6000t급 대형선박이 통행할 수 있게 된 현재 이 다리를 지나다닐 배는 없다. 착수 시점부터 비현실적 사업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서해뱃길사업이 사실상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양화대교는 '혈세낭비'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말았다.
양화대교 인근의 주민들은 "양화대교를 볼 때마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양화대교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익명요구)는 "떡복이 한 접시 팔아도 카드결제해서 세금을 내야 한다"며 "세금을 거뒀으면 피부에 와 닿는 걸 해결해줘야지, 한강르네상스 보면서 '어느 기업 하나 살리려고 그러나?'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말했다. 양화대교 북단(합정동)에서 25년 동안 구두수선집을 운영한 문모씨(54)는 "정부에서 저런 공사를 하면 주민들은 자기들이 낸 세금인 줄은 모르고 '정부가 돈이 많은가보다' 한다"면서 "주민들도 시가 하는 일을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상봉 서울풀뿌리시민사회네트워크(서울풀시넷) 회장은 "당시 오 시장이 '서울은 항구다'라고 선언하면서 6000t 크루즈선이 드나들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했는데 경인운하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고 공사기간의 교통체증 등의 불편함은 오롯이 시민들이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예산감시 시민단체인 풀시넷은 지난해 주민들이 세금낭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예산낭비사례 현장방문 투어'를 기획해 시민들과 양화대교를 포함해 서울신청사, 새빛둥둥섬 등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전 회장은 "당시 가교 설치로 직선도로가 곡선으로 바뀌면서 막힘 현상이 생겼다"며 "생계로 바쁜 주민들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얼마의 세금이 어떻게 낭비됐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과거 예산낭비·전시행정 사례를 분석·정리해 백서로 엮어내는 '거울 프로젝트' 첫 편으로 '양화대교 백서'를 내기도 했다. 백서는 서해뱃길 사업의 비용편익 분석 시 수상버스·크루즈 수요를 과다 적용해 사업성을 부풀린 점,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시즌 사업중단 요구에도 시장 권한대행이 공사를 강행한 점 등을 지적하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은 여론수렴 및 시의회 동의 등 사회적 합의과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상봉 회장은 "당시 시민단체 등이 우려를 표했지만 공권력 동원해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