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16)
"관기는 고을 수령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란다. 고을을 지나는 외국의 사신과 외국을 오가는 우리 사신을 접대하고 위로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고, 국가의 행사가 있을 때 가무를 지원하는 일만을 하도록 되어 있단다."
"하오면? 고을의 사또가 기생 수청을 요구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란 말씀이옵니까?"
"그래. 그게 법에 정해진 원칙이란다. 그 원칙이 묵은 관행 아래 파묻혀버린 것이지. 내가 신임으로 이곳에 올 때, 기생 점고를 금하게 한 것은 그런 뜻이 있단다."
"그렇군요. 사실 나으리가 오시고난 다음부터 기방에 할 일이 없어져서 한심해하고 있사옵니다. 행수기녀(行首妓女)는 이러다가 단양 관기가 모두 굶어죽는 것이 아니냐고 크게 걱정을 하고 있사옵니다. 생계의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난리들입니다."
"그러하겠구나. 그 계책을 찾아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일 터."
"나으리 그럼, 도수매 개화일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그래. 아까 율령격식을 말할 때 '격과 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율령은 현실에 맞게 고쳐지는 것인데, 고을 원들의 수청 관행이 허용되어온 것은 바로 그런 격(格)의 법이라 할 수 있단다. 다만 그것이 과용되어 사람을 억압하고 퇴폐를 조장하는 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더냐.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기생과 유흥을 즐기지 않았느니라. 사내의 풍류가 그런 것이라 한다해도 하는 수 없다. 내겐 그런 시속(時俗)이 맞지 않는 것 같구나. 하지만 이번은 유흥이 아니라 교유(交遊)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너를 내가 이전에 만났던 부인들과 똑같이 대하려 한다. 그리고 수청이 아니라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스스로 확인하여 결심이 섰기에, 기껍고 설레는 마음으로 두향을 맞으려는 것이야."
두향은 감동한 듯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아, 나으리. 제 마음을 마치 거울에 비추는 듯한 행복한 말씀이옵니다. 부인들과 똑같이 대한다 하신 말씀은 두고두고 제게 광영이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책만 읽는 사람이라며 남녀 상열(相悅)에는 무심할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성애(性愛)를 멀리하는 것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지닌 본성(本性)에는 모두 하늘의 뜻이 있다. 남녀가 방사(房事)를 갖는 일은 귀한 일이다. 생명의 비밀이 거기에 있고, 기쁨의 원천이 또한 거기에 있지 않느냐. 혼인을 왜 제도로 만들어 놓았겠느냐. 굳이 외면하거나 폄하하는 것이 오히려 위선이며 어리석음이 아니냐.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 것 자체를 부도덕이나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그 풍조가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상열은 본성에 대한 예절이며 삶의 기초적인 도덕이다. 다만 본성을 지키는 일이니만큼, 귀한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은 꼭 필요하겠지. 나는 돌아간 나의 부인들과도 망설임 없는 뜨거운 사랑을 가졌었다. 잠자리에서 점잔을 빼느라 본성을 숨기지 않았고 사랑하는 여인이 누릴 기쁨을 배려하려 애썼지. 계처(繼妻)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밤마다 나의 잠자리로 파고들었단다. 주위에선 그이가 임신을 하자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개의하지 않았다."
"아. 정말 나으리는 시속(時俗)을 초월하신 분이시옵니다. 상열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본성에 대한 예절이라는 말씀, 기적(妓籍)에 몸담은 제게도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내 뜻을 알아주었구나. 우린 예절이란 걸 강조하기는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불편하고 귀찮은 허식(虛飾)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예절은 인생을 자부심 넘치게 하고, 삶을 품격있게 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의미있고 아름답게 한단다. 마음에 예절이 있는 것은 해와 달을 들여놓는 것과 같단다. 해는 빛나고 달은 은은하지. 예절이 허식이 되는 것은, 마음을 담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을 빌미로 시비하는 마음 때문이지. 중국이 이 나라를 동방예의의 나라라고 하는 것에는, 예의의 생활화를 문명의 잣대로 보는 관점을 담고 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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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千日野話]관리가 기생 범하면 곤장 60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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