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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나으리의 마음, 못 받았으니(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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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나으리의 마음, 못 받았으니(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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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14)


"뜨락을 거니는데 달이 사람을 따라오네
매화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가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는 것도 잊었더니
옷과 두건엔 향기 가득, 몸에는 꽃그림자 가득"
步?中庭月?人 (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繞幾回巡 (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 (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巾影滿身 (향만의건영만신)

"나으리의 시를 들으면, 매화를 하나의 사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인(情人)처럼 대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달밤에 매화를 떠나지 못하며 뜨락을 배회하는 그 마음도 간절하지만, 마침내 매화 곁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심경 또한 애틋하기 그지 없습니다. 꽃에 취한다는 것이 이런 경지가 아닐까 합니다. 더욱 아름다운 건, 마지막 구절입니다. 매화와 사람이 마침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 사람에게서 매화향기가 나고 사람에게서 매화가 달빛에 일렁이는 그림자의 넋이 그대로 들어앉는 이 황홀경은, 혹애매(惑愛梅)의 퇴계어르신이 아니면 범접할 수 없는 경계일 것입니다. 저는 매화가 못되어 인간으로 태어나 나으리의 이토록 뜨겁고 애틋한 마음을 받아보지 못하니, 저 꽃을 장차 질투하지 않을까 걱정이옵니다."


"두향아,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 네가 바로 매화이니라. 너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매화가 낳은 자식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더냐? 네가 내게 온 것은, 그 매화의 정령이 너를 움직인 것이 아니겠느냐."

"하오나, 나으리는 저를 두고만 보실 뿐, 가까이 하지 않으시니 저는 한낱 매영(梅影, 매화그림자)에 불과하지 않을지요." 두향이 어두운 표정을 거두지 않으며 무심히 거문고를 탄다.


"허허. 그건 아니로다. 이 시를 한번 들어보려무나.


옛책의 한복판에서 위대한 스승을 뵌 뒤
텅 빈 밝은 방에 초연하게 앉았다
매화 벙그는 창의 봄소식을 다시 보려무나
거문고 끌어안고 끊어진 줄을 탄식하지 말게나"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소식)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


"막향요금탄절현, 마지막 구절이 마치 제게 말을 거는 듯 하군요."


"그래. 절현(絶絃)은 단순히 거문고 줄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백아와 종자기라는 중국 전국시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단다. 백아는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당시의 유명했던 연주가인 성연자라는 사람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단다. 스승 성연자는 백아를 태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대자연의 풍경과 소리에 어울리는 자연의 음악을 터득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하는구나. 이렇게 해서 백아는 당대 최고의 거문고 예인(藝人)이 되었지. 하지만 스승 성연자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오묘한 경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이 비운의 예술가는 상심한 채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배를 멈추고 거문고 한 곡조를 연주하게 되었지. 그때 저쪽 강기슭에서 그 가락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있었지. 그는 가난한 나무꾼인 종자기라는 사람이었어. 종자기가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자 백아는 신이 나서 자신이 평생 수련한 곡조인 수선조라는 곡을 연주를 하지. 그것을 듣고난 종자기는 "정말 아름답고 빼어난 음악입니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위대한 연주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도한 파도가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며 흘러가는 듯 합니다."라고 평을 해주었지. 백아가 다시 천풍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종자기는 말했지.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군요. 가슴 속에 해와 달을 거두어 들이고 발 아래 무수한 별무리를 밟고 서 있군요. 참으로 높고높은 봉우리입니다." 그런 평에 백아는 뛸 듯이 깊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주는 지음(知音)의 우정을 나눴다고 하지. 그러다가 종자기가 죽자, 다시 백아는 절망하며 자신의 거문고 줄을 끊고는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이것을 '절현(絶絃)'이라고 한단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퇴계는 매화등을 돌려보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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