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9)
"허허. 마지막 결구(結句)를 한번 읊어보려무나."
"네에. 고개를 치켜든 꽃머리 하나하나마다 마음 다가오는 게 보이도다. 묘두일일견심래(昴頭一一見心來)."
"그래, 그거야."
"아아, 나으리."
두향은 자기도 모르게 퇴계의 가슴 속으로 안겨들어가 더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퇴계의 가슴도 뛰고 있었다. 조선 최고의 매화시, '도수매'는 그렇게 태어났다.
꽃 한송이가 고개 돌리고 있어도 그 미워함을 견디기 어려운데
어찌하여 모두 거꾸로 매달리고 매달려 피었단 말인가
이리하여 내가 몸을 낮춰 꽃밑에서 올려다보니
고개를 치켜든 꽃머리 하나하나마다 마음 다가오는 게 보이도다
퇴계와 두향의 합작시 '거꾸로 매달린 매화'
두향이 감동한 것은 퇴계의 천재적인 시적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 속에 한 인간을 느꼈다. 두향이 처음에 잡은 시는 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퇴계는 그것을 인간의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두향은 바닥으로 내려앉은 매화도 자세히 살펴보면 송이송이 모두 아름답다는 시의(詩意)를 담았는데, 퇴계는 그 꽃을 제대로 보아주기 위해 몸을 낮추는 인간을 그려냈다. 낮은 곳에 처한 존재의 못난 측면, 어리석은 측면, 하찮은 측면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았다. 그것과 같은 눈높이로 낮추는 저 태도야 말로 퇴계가 지닌 인격의 말없는 웅변이 아닌가. 매화가 인격화(人格花)라더니, 퇴계는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고결한 품격까지 매화시에 담아냈다. 이것은 끝없는 자기수양으로만 가능한 경지가 아닌가.
'동방의 주자(朱子)'라는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 주자가 성리학의 핵심으로 내놓은 거경궁리(居敬窮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모두 저 매화시 한편에 생생하게 숨쉬며 들어있다. 공경하는 삶을 통해 만물의 본성(性)과 진리(理)에 이르는 것이 거경궁리다. 몸을 바닥으로 향한 매화에 똑같이 몸을 낮추는 태도가 '거경'이고, 그리하여 매화의 진면목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궁리'가 아닌가. 또 매화의 형편을 살피고 그것에 맞는 예절을 지니는 것이 격물(格物)이며 그런 세심하고 조심스런 태도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 치지(致知)가 아닌가. 많은 유학자들은 실감도 나지 않는 추상적인 낱말들로 공자와 주자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퇴계는 저 매화시 한편으로 생생한 진리를 펼쳐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를 매화를 읊은 수많은 노래 중의 하나로 무심히 넘겼지만, 유학의 경전들을 몰래 읽으며 내공을 키워왔던 두향에게는, 전율을 느낄만큼 빼어난 대가의 경지를 목도하는 듯했다. 이런 분을 눈앞에 모시고 있다니, 참으로 과분한 행복이 아닌가. 두향은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고개를 돌렸다.
퇴계는 고개 떨군 두향의 검고 빛나는 머릿결을 정겹게 쓸어내리며 귀밑머리를 쓰다듬었다. 가볍게 안은 채 오른손으로 가만히, 흐느끼는 등을 두드렸다. 따뜻한 정적이 흐른 겨울밤. 여인이 고개를 들고 눈이 부신 듯 퇴계를 쳐다보았다. 해쓱한 가운데 화색이 도는 얼굴. 너야말로 한 떨기 도수매가 아니더냐. 고운 입술이 살짝 열리며 하얀 이가 드러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인이 있는가. 매화를 빙옥처사(氷玉處士)라 하더니, 이 여인이야말로 얼음같이 투명하며 옥같이 고운 살결을 지녔다. 퇴계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두향아."
"예, 나으리."
"밤이 깊어가니 피곤할 텐데 너는 돌아가서 쉬도록 하여라."
"자리끼(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두는 마실 물) 시중을 들어야 하지 않을지요?"
"나는 괜찮다. 우리가 지은 시를 음미하며 잠을 청하고 싶구나."
"새벽에 잠자리를 정리하러 올까요?"
"그리 하여라."
"예. 그러면 소녀, 물러가겠습니다."
두향은 일어섰다. 서운한 눈빛이 살짝 보인다. 퇴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