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千日野話]퇴계와 두향 함께 시를 짓다(8)

시계아이콘01분 28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8)

[千日野話]퇴계와 두향 함께 시를 짓다(8)
AD


"나으리, 모친의 말씀에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형이 비록 울지 않으나, 저렇게 피가 흐르는데 어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 아픈 것이 내게 전해오니 나로서는 절로 눈물이 납니다."
"아."
"그러자 어머니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셨지. 오늘 너의 사연을 듣고보니 다시 여덟 살처럼 울음이 날 듯 하구나. 나도 두 살에 아비를 잃고 홀몸이 된 어머니 슬하에서 여러 형제와 함께 자라났느니라. 서른일곱 살에 그 어머니를 다시 잃어 하늘벼랑의 고아가 되었지. 삼년상을 치르면서 슬픔이 지나쳐 몸이 꼬챙이처럼 말랐었지. 네 이야기가 어찌 무심하게 들리겠느냐?"

퇴계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네가 겪은 신산(辛酸)을 들으니, 나의 신산은 문득 무색하게 느껴지는구나."
"꼿꼿하게 자라나신 그 마음을 이제 더욱 알 것 같사옵니다."
"모친은 어린 우리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세상에서는 보통, 과부의 자식은 옳은 가르침을 받기 어렵다고 욕을 한다. 너희들이 남보다 백 배 더 공부에 힘쓰지 않는다면, 어찌 이런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느냐.'"
"아아. 참으로 귀한 모육(母育)이 계셨다 하겠습니다. 나으리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몇 해 전 화원 끝의 수양매(垂楊梅) 한 그루에 반해 읊었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거꾸로 늘어뜨린 매화를 보고 느낌이 있었지요."
"들려줄 수 있겠느냐."


퇴계는 잡았던 두향의 손을 가만히 놓고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재능이 미천하여 시(詩)가 되지는 못하였사온대… 그 매화를 도수매(倒垂梅)라 이름하였습니다. 묘두일일견심래(昴頭一一見心來), 일곱 글자만 얻었습니다. 고개를 쳐든 머리 하나하나마다 마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구나. 제 일생의 처지가 그 매화처럼 도수(倒垂)하여 피었으니, 고개를 쳐든 그 형상이 참으로 닮았다 여겼사옵니다."
퇴계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보기 드문 절창이 아니냐. 도수매… 고개를 치켜든 머리 하나하나마다 마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구나."
퇴계는 묘두일일견심래를 되뇌어 읊으며 이렇게 중얼거리듯 말한다
"오늘밤 우리가 저 시의 몸을 건져보자."
"아, 예 나으리."
"래(來) 자를 차운해야 하니, 개(開)를 쓰고 시(猜)를 쓰면 좋겠구나."
"그렇군요. 가슴이 뛰네요."
"나도 그렇구나. 이렇게 시작할까." 퇴계는 운을 뗐다.


"꽃 한송이가 고개 돌리고 있어도 그 미워함을 견디기 어려운데…
일화재배상감시(一花背尙堪猜)"
"아아."
"어찌하여 모두 거꾸로 매달리고 매달려 피었는가. 호내수수진도개(胡奈垂垂盡倒開)."
"아, 그렇게 시(猜)와 개(開)를 쓰셨군요."
"허허, 그래. 이번 구절이 반전인데… 음. 이러면 어떠냐? 이리하여 내가 몸을 낮춰 꽃밑에서 올려다보니… 뇌시아종화하간(賴是我從花下看)."
"과연, 과연 어질어질합니다. 꽃이 바닥을 향해 있으니 사람이 그 아래로 내려가 올려다 보는군요. 정말 생각의 대전환이옵니다."


퇴계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그간 이 꽃을 내려다보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 도수매 때문에 그 감사함을 표현하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니더냐."
"그러하옵니다, 나으리. 시를 다시 돌아보니, 기(起)와 승(承)은 거꾸로 선 꽃의 이야기이고, 전(轉)은 그 꽃을 보려고 거꾸로 눕는 사람의 이야기이니, 말없이도 통하는 마음이고 낮아질수록 향기나는 사랑입니다."
두향은 감동한 듯 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나즉히 이었다.
"나으리는 정말 천하의 가인(歌人)이십니다. 사람과 꽃이 위로하듯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승전결 중에서 전(轉)까지 멋지게 왔사옵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매화향기를 남기고 떠난 아비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