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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는 후처 권씨가 생각났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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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10)


[千日野話]퇴계는 후처 권씨가 생각났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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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이 열리고 마당을 지나가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으며 퇴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문소리가 들리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사위에 정적이 내려앉고 그의 마음도 고요해진다.

그가 두향을 급히 돌려보낸 것은, 다른 한 여인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2년 전에 잃은 두 번째 부인 권씨였다.


그의 결혼생활은 평온하지 않았다. 21세 때(1521년) 허씨에게 첫 장가를 들었다. 몸이 약해서 늘 걱정이었는데 부인은 둘째 아들 채(寀)(첫째는 준(寯))를 낳고는 한 달 만에 세상을 떴다. 결혼한 지 6년을 넘긴 때였다. 11월 초겨울 소소리바람이 한달바기 어린 녀석의 품으로 스며드는데, 아내가 눈을 감자 당혹과 절망을 견디기 어려웠다. 젖먹이는 가솔 노비 중에서 다행히 유모가 있어 육아를 맡길 수 있었지만, 당장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내 허씨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여 새 아내를 얻는 일을 주저했다.

3년 뒤(1530년) 서른 살에 둘째부인 권씨를 맞았다. 첫 부인과 사별한 지 3년이 지난 뒤였다. 아내를 새로 얻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인연을 통해서였다. 이황이 사는 향리 인근의 예안 땅에 권질(權瓆)이라는 기개 있는 학자 하나가 유배를 왔다. 권질은 젊은 이황을 만난 뒤 그의 인격과 학식에 반했다. 그에게 자기 가문의 기구한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갑자사화로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부친은 귀양지에서 사약을 받고 운명하였습니다. 지난날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한 일이 빌미가 되었지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뒤 생모의 죽음에 가담한 사람들을 색출할 때 붙잡혀갔는데, 울진 평해로 유배되었다가 거기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친은 그때 관노(官奴)가 되었습니다. 저는 억울한 부친의 죽음을 한(恨)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역적의 아들이라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던 어떤 자가 저를 무고한 모양이었습니다. 왕(연산군)을 비방하는 언문 투서를 꾸몄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거제도로 귀양을 갔습니다. 언제쯤 사약이 내려올지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반정(反正ㆍ중종반정)이 나서 해배(解配)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이곳에 오게된 것은 기묘사화와 관련해 또 다른 무옥(誣獄)에 휘말린 때문입니다."


이황은, 기구한 한 집안의 정치적 파멸을 보면서 깊은 멀미를 느꼈다. 왕의 전횡과 신하들의 부도덕한 정략적 준동 앞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답답한 무력감을 함께 느끼며 권질을 위로했다. 어느 날 권질은 아내 허씨를 잃고 홀로된 이황에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내게 장성한 딸이 하나 있소이다. 인물은 그리 나무랄 만하지 않으나, 어려서부터 모진 일을 하도 많이 겪어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런 형편으로 살고 있으니 저 불쌍한 것에게 어디 짝을 찾아줄 상황도 못되고 하여… 영남의 큰 학인(學人, 퇴계를 가리킴)께 맡길 터이니, 모자라는 딸을 거두어 처녀라도 면하게 해주시면, 아비의 원통함이 조금 풀릴 것 같소이다. 부디 뿌리치지 마시기를."


이황은 그 부탁을 듣고 한동안 가만히 생각했다. 나라의 비정(秕政)으로 실성해버린 처녀에 대한 측은지심도 컸고, 거듭 비통한 상황에 처한 권질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작지 않았다. 품으로 날아드는 참새도 함부로 내치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그는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모친께 허락을 받은 뒤 예를 갖추어 혼례를 올리겠습니다. 어른께서는 부디 기력을 보존하소서." 그렇게 해서 성사된 결혼이었다.


두 번째 아내는 참으로 곱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언행이 정상적이지 못했다. 이황은 부인의 그런 점을 기꺼이 받아주고, 문제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펴주었다. 임지(任地)마다 그녀를 동행하여 깊은 애정을 쏟았다. 어느 날 상가에 조문을 가려던 이황은, 도포자락이 해진 것을 보고는 아내에게 좀 꿰매달라고 했다. 꿰매온 것을 입으려고 보니 흰 도포에다 빨간 헝겊으로 기웠다. 하지만 이황은 말없이 그 옷을 입고 문상을 갔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예학에 정통하신 분이 어찌 우스꽝스러운 도포를 입고 상가에 왔느냐"고 수근거렸다. 그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두향, 퇴계의 품에 안기다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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