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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46세 퇴계는 삶을 다시 생각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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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11)


[千日野話]46세 퇴계는 삶을 다시 생각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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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친척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종가에 모였을 때였다. 아내 권씨가 갑자기 제사상 위의 음식을 주섬주섬 집어먹는다. "제사도 지내기 전에 며느리가 음복을 하다니, 참으로 무례한 행동"이라며 주위에서 끌탕을 했다. 그때 이황은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예절에 어긋난 일입니다. 하지만 조상께서 귀여운 손주며느리의 행동에 그리 노여워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모자라는 아내를 감쌌다.

늘 조마조마했던 권씨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며 16년을 함께 살았다. 정신이 맑은 날 어느 밤에 권씨는 남편에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내 인생 복이 옅어 못볼 걸 다 봤는데/숨겨둔 복주머니 남복(男福)은 있었구나/말도 뜻도 따뜻하고 가슴도 따뜻하네/이런 하늘 보았으니 죽어도 여한없네." 그 노래가 예언이 되었던가. 1546년 그녀는 안타깝게도 난산 끝에 숨지고 만다. 어린 생명도 건지지 못했다. 불행은 떼로 온다더니. 2월에 장인 권질을 잃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7월에 다시 여인을 잃은 것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하늘은 내게 보배를 잠깐 보여주고는 사정없이 빼앗아 가버린단 말인가." 이황은 다시 겪는 상처(喪妻)에 터지는 울음을 견디기 어려웠다.


마음을 진정시킨 뒤 그는 전처의 아들 준과 채를 불렀다. "새 어머니는 너희들의 친어머니와 다름없다. 불행히도 새로 아이를 갖지 못하였으니 너희 둘이 친자식이다. 그 예를 갖추어 빈틈없이 상을 치러야 한다." 아들들은 무덤이 있는 산기슭에 여막을 지어 시묘살이를 하였고, 이황은 건너편에 암자를 지어 1년간 기거하였다. 그는 평소에 친모와 계모를 구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해왔고, 그것을 손수 실천하여 보여주었다. 도수매를 생각하며, 가엾은 둘째 아내 권씨를 떠올린 것이다. 거꾸로 핀 매화 같던 그 여인을 사람들은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했지만, 몸을 낮춰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그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내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황은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질서가 공고해지던 조선 중기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놀랄 만큼 진보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의리와 예절로 대해야 한다는 유학자의 기본적 태도가 투철했기 때문이리라. 첫 부인 허씨가 눈을 감은 뒤, 이황은 처가를 계속 돌보았다. 홀로된 장모를 위해 대소사(大小事)를 일일이 의논하며 도와준다. 허씨와의 의리를 위해 재혼을 망설였던 점도, 당시로선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혼인에 대한 뜻이 없자, 집안 어른들이 첩실(妾室)을 권했다. 학문에 전념해야할 이황에게, 자녀를 돌보는 일과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일을 해줄 사람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황의 첩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여인이었다. 어린 두 아들을 잘 길러주었고 남편을 지극히 정성스럽게 섬겼다. 여인은 이듬해에 아이를 낳았다. 적(寂)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녀가 죽은 뒤 이황은 이적을 자신의 족보에 올린다. 그리고 이후에 집안에서 절대로 적서(嫡庶)를 차별하지 않도록 명한다.


마흔 여섯. 그는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둘째 아내를 잃은 뒤 상실감에 시달렸고 벼슬살이의 환멸도 깊어졌다. 조정이 내리는 관직을 마다하고 안동에서 책을 읽으며 살고 싶었다. 우선 도연명처럼 사람들 사이에 숨고 싶었다. 온계리 남쪽 지산(芝山) 북쪽 마을에 허름한 집을 지은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씻을 물소리와 숲속의 공기가 그리워졌다. 세속에서 조금 떨어져 앉고 싶었다. 토끼골(兎溪, 혹은 土溪)에 있는 호젓한 인가로 옮겼다. 계곡 동쪽 바위 옆에 암자를 지어 양진암(養眞菴)이라 이름 붙였다.


양진암이란 이름은 사연이 있다.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관직을 벗고 경주 양동으로 돌아와 세운 독락당 건물 중에 계곡 자락 곁에 계정(溪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의 편액을 이황이 쓸 만큼 회재와 이황 간에는 깊은 교분이 있었다. 회재가 은퇴할 때 석별의 술자리를 주선한 사람도 그였다. 독락당 계정의 다른 이름이 양진암이다. 양진(養眞)은, 세상살이로 때묻은 마음을 씻고 자연으로 돌아가 고요히 본성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퇴계는 후처 권씨가 생각났다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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