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지만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금세 알 수 있는 이 명백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요즘 부쩍 주변에 늘어나고 있으니 참 난감한 일이지만…). 그때 내 관심사는 실로 다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이 맞춰보기'였다. 하루아침에 급부상한 유명인물의 탄생연도를 끝까지 추적하여 구태여 내 나이와 비교해보는 일이다. 일테면 1990년대 초반 어느 날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로 뜰 무렵 그가 언제 태어났는 지 알고는 심각하게 절망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로부터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안도현이 있는데 그때의 좌절도 만만치 않았다. '같은 해에 태어난 저이는 벌써 저만큼 앞에 달려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못나고 찌질한 발상이었다. 그나마 대견한 건 '한탕'으로 떼돈을 벌거나 줄타기를 잘해 벼락출세한 동갑내기에겐 큰 감흥이 없었다는 정도(그 시절 아예 돈이나 자리에 매진했더라면 지금 이 나이에 밤늦게 정체불명의 '여담' 끼적대느라 낑낑거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지만). 사사건건 남의 나이 따지는 고질병은 철이 들면서 차차 잦아들었다. 스타트 라인에 함께 서 있던 수많은 친구들이 하나둘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걸 쓸쓸한 눈으로 지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나이가 된 것이다(그들의 뒷모습에 박수 칠 경지까진 아직 미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한동안 마음 편히 지냈건만 최근 이 몹쓸 병이 스멀스멀 도지고 있다. 아내와 함께 TV를 보다 이렇게 외쳐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여보, 김연아 한해 광고수입이 10억원이라는 데 혹시 몇 년생인 줄 알아?" 또는 "오늘 골프대회에서 역전우승해서 상금 1억5천만원 받은 고보경이 겨우 열여섯, 97년생이라는데…. 둘째와 동갑 맞지?" 바야흐로 우리 대에서 끝내야 할 '나이 맞춰보기'란 치명적인 질병이 이제 한참 자라나고 있는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될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그것도 '돈'과 '자리'에 연연하는 악성 바이러스까지 얹어져 더 찌질하고 더 못난 방향으로.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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