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7억 엔의 계약이 끝났다. 오릭스 버팔로스의 이대호다. 입단 당시만 해도 일본 진출을 향한 시선은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선동렬, 이상훈, 구대성, 임창용 등의 투수와 달리 성공한 야수가 지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손꼽히지만 승승장구한 시즌은 8년(2004년~2011년) 가운데 정확히 3년(2005년~2007년)이었다. 일본 진출 전 뽐냈던 ‘장타 쇼’를 떠올리면 스스로 만족하는 시즌은 2006년 한 해일수도 있다.
이대호의 지난 2년은 조금 달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뛴 11년(2001년~2011년) 동안 그는 타율 0.309 출루율 0.394 장타율 0.529 OPS 0.923을 기록했다. 특히 타격 7관왕을 달성한 2010년에는 홈런 44개를 터뜨렸다. ‘거포’처럼 보이지만 이대호는 사실 공을 잘 맞추는 타자에 가깝다. 통산 홈런이 225개로 연 평균 20개가량을 때렸다. 전성기로 범위를 좁혀도 수치는 큰 차이가 없다. 2006년부터 6년간 연평균 홈런이 28.67개다. 물론 이는 프로야구의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글쓴이는 이대호의 재능으로 넓은 히팅 존을 주목한다. 나쁜 볼도 곧잘 안타로 연결하는 재주를 갖췄다. 일본 진출 당시 부정적 시각은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배트볼 히터의 성향과 공인구 교체와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사상 최악의 투고타저를 맞은 일본리그의 환경은 충분히 장애요인으로 거론될 만 했다.
일본리그 첫 시즌인 지난해 3월과 4월 이대호는 24경기에서 타율 0.233(86타수 20안타) OPS 0.684를 남겼다. 하지만 5월 한 달 동안 타율 0.322(87타수 28안타) 8홈런 OPS 1.030을 기록했고, 그 뒤 거짓말처럼 반등을 이뤘다. 6월 타율 0.347 1홈런 OPS 0.968을 남겼고, 7월 타율 0.338 7홈런 OPS 1.060으로 선전을 거듭했다. 8월부터 가진 54경기에서 타율 0.251 6홈런 OPS 0.752로 다소 부진했으나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정규시즌을 타율 0.286 24홈런 150안타 OPS 0.846의 훌륭한 성적으로 장식했다. 승승장구는 올해도 계속됐다. 141경기에서 타율 0.303 24홈런 158안타 OPS 0.879를 남겼다. 3경기 결장은 시즌 마지막 원정이던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3연전으로 모리와키 히로시 감독의 배려가 작용했다.
이대호는 오릭스에서 보낸 2년 동안 타율 0.294 48홈런 308안타 OPS 0.864을 기록했다. 배드볼 히터에도 빼어난 유연성과 컨택 능력으로 적잖은 일본 투수들을 괴롭혔다.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한 공은 직구였다. 올 시즌만 해도 직구에 0.376(202타수 76안타)의 높은 타율을 남겼다. 76개의 안타 가운데 18개는 홈런이었다. 변화구 대처에선 다소 아쉬움을 보였다. 슬라이더(타율 0.262), 커브(타율 0.273), 체인지업(타율 0.250), 포크볼(타율 0.250) 등의 다양한 변화구에 0.250 이상의 타율을 선보였으나 홈런이 3개(슬라이더 2개, 체인지업 1개)에 그쳤다. 재미를 보지 못한 건 투심(타율 0.256), 커터(타율 0.238)와 같은 변종직구도 마찬가지. 투심 3개를 홈런으로 연결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이대호는 일본리그에서도 밀어치기에 능했다. 우익수 방향으로 향한 타구의 타율이 0.469(98타수 46안타)나 됐다. 이 가운데 6개는 홈런이었다. 중견수 방향으로 보낸 타구의 타율은 0.243으로 다소 낮았다. 안타 가운데 홈런은 5개였다. 문제는 당겨 친 타구의 질이었다. 좌익수 방향으로 흐른 타구의 타율은 0.295(210타수 62안타)로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홈런은 13개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많은 홈런을 때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호는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쏠리는 공(한가운데 낮은, 한가운데, 한가운데 높은)을 쳐 10개의 대형아치를 그렸다. 스트라이크 존 높은 코스(몸 쪽 높은, 한가운데 높은, 바깥쪽 높은)의 공에는 6개였다. 중간 높이(몸 쪽 중간, 한가운데, 바깥쪽 중간)의 공에는 13개의 홈런을 쳤다. 실투나 높은 공을 비교적 잘 맞췄으나 타구를 그리 멀리 보내진 못했다.
비교대상으로 거론하기 조금 애매하나 이대호보다 더 심각한 배드볼 히터 블라디미르 발렌틴(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성적을 살펴보자. 정규시즌 배트는 투수들에게 공포였다.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공에만 이대호보다 11개 많은 12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물론 약점도 있었다. 스트라이크존 몸 쪽(몸 쪽 낮은, 몸 쪽 중간, 몸 쪽 높은)으로 붙어 들어오는 공에 8개의 홈런밖에 치지 못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를 통과하는 공에는 19개의 홈런을 때렸다. 스트라이크존 바깥(바깥쪽 낮은, 바깥쪽 중간, 바깥쪽 높은)으로 도망가는 공에도 21개의 대형아치를 쏘아 올렸다. 투수들이 그나마 발렌틴을 제압할 수 있던 코스는 바깥쪽 낮은 쪽이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도 그는 타율 0.278 3홈런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NPB 외국인선수 고액연봉의 기준
오릭스는 시즌 중반부터 이대호의 연장계약을 추진했지만 상당한 온도차에 부딪혔다. 10월 14일 2년간 8억 엔을 제시했으나 돌아온 답은 “상상해본 적도 없는 금액”이었다. 이대호는 아직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인 조건을 내비치지 않았다. 다양한 정황상으로는 5억 엔 이상을 요구하는 듯 보인다. 액수가 일본리그에서 초특급선수로 불리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대호의 생각은 그보다 더 높을 수 있다. 어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007시즌을 앞두고 이승엽에게 안겨줬던 4년간 연 평균 7억 5천만 엔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대호는 그 동안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끌어올렸다. 모든 일본 구단이 실력을 인정할 정도다. 그러나 엄밀히 연 평균 5억 엔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년 동안 일본리그는 비정상적인 투고타저를 겪었다. 그 시대가 막을 내린 올 시즌 각 구단들은 특급 외국인타자의 최우선 기량으로 30홈런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리그 내 고정관념에 가깝다. 극단적 투고타저였던 지난 2년 동안 OPS형 타자에 대한 가치가 주목을 받았으나 공인구 반발력이 재조정되면서 분위기가 이전으로 회귀했다.
징후는 외국인선수에게 지급되는 성적에 따른 퍼포먼스 보너스에서 쉽게 발견된다. 12개 구단들은 외국인선수가 정규시즌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면 1억 엔의 보너스를 준다. 거액의 보너스는 40홈런과 50홈런, 55홈런에도 적용된다. 요미우리, 한신 타이거즈,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그러하다. 기록을 지나칠 때마다 1억 엔씩을 추가로 지급한다. 나머지 9개 구단은 5천만 엔 정도다.
올해 60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리그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발렌틴은 이미 지난해 12월 15일 야쿠르트와 3년간 7억5천만 엔에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연 평균 연봉이 2억 5천만 엔인 셈. 그는 홈런으로 연봉보다 많은 3억 엔의 보너스를 챙겼다. 30홈런을 때렸을 때 1억 엔을 받았고 40홈런, 50홈런, 55홈런, 60홈런을 쳤을 때마다 5천만 엔씩을 거머쥐었다. 요미우리나 한신, 소프트뱅크와 같은 부자구단 소속의 선수였다면 발렌틴은 보너스로만 6억 엔을 챙겼을 것이다.
2002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리그를 뒤흔든 최고의 계약 제시로 많은 이들은 그해 겨울 요미우리를 손꼽는다. 마쓰이 히데키에게 무려 5년간 100억 엔을 제안했다. 그해 야쿠르트에서 요미우리로 팀을 옮긴 로베르토 페타지니는 2년 20억 엔의 계약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2005년 소프트뱅크의 토니 바티스타 영입도 빼놓을 수 없다. 2년간 15억 엔을 받았다. 이들의 계약 혹은 러브콜에선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홈런이다. 마쓰이는 2002년 커리어하이에 해당하는 50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페타지니는 야쿠르트에서 뛴 4년(1999년~2002년) 동안 160개의 대형아치를 그렸고, 바티스타는 메이저리그에서 네 차례(1999년, 2000년, 2002년, 2004년)나 3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대호에게 올해는 몸값을 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공인구 반발력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보다 많은 홈런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개수는 지난해와 같은 24개였다. 오릭스 구단은 대외적으로 이대호의 활약을 칭찬하고 있지만 이 점에서 충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재계약에 거액을 쓰기보다 30홈런 이상이 가능한 파워히터를 따로 물색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대호에게도 목소리를 높일 여지는 있다. 고액 연봉의 또 다른 근거로 한국에 판매되는 TV중계권 수익을 내세울 수 있다. 요미우리와 한신을 제외한 10개 구단의 중계권료는 게임당 약 500만 엔이다. 특정 방송사가 홈 72경기의 중계권을 구입한다면 총 3억6천만 엔(약 39억 원)이 소요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중계권료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구단에 돌아간다. 오릭스가 지난 2년간 짭짤한 재미를 누렸단 얘기다. 실제로 오릭스는 지난 2년간 국내 케이블 채널로부터 80억 원 가량의 중계권료를 챙겼다. 이대호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돈으로 썼던 셈. 중계권료 수익으로 재미를 본 일본 구단은 하나 더 있다. 요미우리다. 이승엽이 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 홈경기 1천만 엔, 원정경기 500만 엔 등 연간 약 10억8천만 엔의 중계권료를 챙겼다. 이 기간 이승엽의 평균 연봉은 6억3300만 엔으로 중계권료보다 훨씬 적었다.
②편에서 계속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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