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부가 무분별한 투자를 막기 위해 실시하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예비 타당성조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해까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 없다'는 판정을 받은 23개 SOC사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타당성조사 취지가 무색하다. 그렇다면 예비 타당성조사는 왜 하는가.
정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300억원 이상인 신규사업의 경우 예비 타당성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용 대비 편익, 정책적 분석, 지역균형발전 효과를 합한 종합평가(AHP) 점수가 0.5를 넘지 못하면 '타당성 없다'는 판정을 내린다. 국회 분석 결과 총사업비 11조2455억원이 들어가는 23개 SOC사업의 AHP가 0.5에 못미쳤다. 인덕원~병점 전철(0.257점), 안동~영덕 간 고속도로(0.476점) 사업 등이 단적인 사례다. 현재까지 지원된 정부 예산은 3300억원으로 앞으로도 타당성 없는 사업에 약 11조원의 세금을 더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예비 타당성조사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AHP가 0.5 이하라도 사업 추진을 막을 길이 없다. 이로 인해 지역균형발전의 명분, 선거 등 정치적 필요에 따라 판정을 뒤집고 타당성 없는 사업이 강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임의로 조사면제 대상을 변경할 수 있는 점도 문제다. 이명박 정부에서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사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9년 관련 규정을 고쳐 재해예방사업도 조사면제 대상에 넣었다. 4대강 핵심사업인 보 건설과 준설 사업이 조사대상에서 모두 빠졌음은 물론이다.
정부와 국회는 예비 타당성조사가 취지에 맞게 제 기능을 하도록 관련 규정을 고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비 타당성조사가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조사 결과 타당성이 낮다고 판정난 사업은 추진할 수 없도록 명문화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가 조사 제외 대상 사업을 편의적으로 정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면제기준을 구체화하고 절차도 투명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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