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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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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2장 깽판 경로잔치(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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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의 약속만큼이나 진실과 거짓말이 적당히 섞여있는 건 없을 거라고.... 누구나 사랑을 할 땐 영원을 걸고 약속을 하지만 유한할 뿐인 인간에겐 누구에게도 그런 영원을 걸 권리도, 능력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혜경이에 대한 자신의 사랑 역시 모래탑 같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었다.

아니다. 하림은 곧 머리를 저었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생각하면 자기에겐 혜경이 밖에 없었다. 자기가 사랑했고,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고향 같은 그녀였다. 그녀에겐 자신의 청춘의 시간과 추억이 묻어 있었다. 그녀에 비하면 어쩌면 소연이는 어쩌면 지나가는 바람 같은 존재인지도 몰랐다. 언젠가 혜경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하림이 넌, 멀쩡한 여자 만나 멀쩡한 결혼을 하면 좋겠어.’

‘피이, 그럼 넌 멀쩡한 여자가 아니야?’ 그녀의 말에 하림이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난 한번 결혼했으니 숙제 끝난 셈이지.’ 그리고 조금 있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번이면 족하겠더라. 남자랑 한 지붕 한 이불 밑에서 살림 살면서 아이 낳고 아웅다웅거리는 것 말이야. 너랑 결혼해서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하고 말했었다.


그녀가 말했던 ‘멀쩡한 여자’ 속에 어쩌면 소연이 같은 여자가 들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직 결혼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요즘 같은 세상, 이혼하고 재혼한 여자도 수두룩한데, 하물며 사별한 경우라면 멀쩡을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만나서 살면 될 뿐일 것이었다. 흉이 될 것도 없었고, 짐이 될 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건 하림이 들으라고 해 본 마음에 없는 말이었지도 모른다. 단지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해 본 말. 이 세상엔 마음에 없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 말들이 더 많을 것이었다. 그 마음에 없는 말 뒤에는 감추어진 혜경의 진짜 마음이 있을 것이었다. 그 진짜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 진짜 사랑일 것이었다.
어쨌든 여기 일들이 정리되는 대로 하림은 혜경이에게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장원을 정리했다니 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며칠 후, 하림이 늦은 아침을 먹고 식탁을 겸한 탁자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앉아 있는데 멀리 동네 있는 쪽에서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스피커에서는 앵앵거리는 잡음과 함께 신나는 트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에 익은 트롯 멜로디였다. 그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파도처럼 바람을 타고 하림의 화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쉴새없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안내 방송 비슷한 것도 들려왔다. 놀라서 짖어대는 개 소리도 그것에 반주처럼 섞였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갑자기 소란해진 느낌이었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 오분, 거의 점심 때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하림은 오늘이 바로 남경희가 귀띔해주었던 그 경로잔친가 뭔가가 있을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림은 팔을 뒤로 젖히고 깍지를 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뒤로 비스듬히 의자 뒤로 몸을 뉘었다. 그리곤 입이 찢어져라고 하품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핑계거리가 없었는데 그만 작업할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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