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지난 23일 저녁 여주시 산북면 송현리. 조용했던 마을회관에 때 아닌 검은색 자동차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산북면장을 비롯해 다른 마을 이장과 면 단위 기관장들이 탄 차량 10여대였다. 이들은 넓은 마을회관 앞 주차장을 점령하다 시피 했다. 주민들에게 인근 레미콘공장이 들어서는데 따른 설명회를 하기 위해 면장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됐다.
민자로 추진되는 국책사업 곳곳에서 주민과 정부·지자체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민자 국책사업의 원칙이 대부분 '공사강행 후 주민설득'에 있어 갈등만 키우고 있다. 제2영동고속도로(이하 제2영동) 2공구를 둘러싼 갈등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2영동 2공구 구간인 여주시 산북면 송현리 주민들과 지자체가 설명회 자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제2공구 구간에 레미콘공장과 파쇄야적장이 들어서기로 추진되면서 주민들은 비산먼지는 물론 농작물 피해, 지하수 고갈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장 설립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대책위원회인 '환경보전위원회(이하 환보위)'를 구성하고 강력대응에 들어갔다.
환보위의 한 관계자는 "레미콘공장 등에 대해 지자체 단체장들인 시장과 면장이 앞장서서 인허가를 내줬다"며 "인허가를 내 주기 전에 주민들은 한마디의 설명도, 이후 절차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환보위는 뒤늦게 각 기관에 민원을 제기했고 최근 환경부는 "주민들의 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업승인이 불가능하다"며 "선(先) 민원 처리, 후(後) 사업승인을 하라"고 국토교통부 등 유관 기관과 업체에 공문을 보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담당 지자체인 여주시와 산북면 등은 뒤늦게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하겠다고 나섰다. 사전에 공청회를 거치고 주민들과 대화를 해야 했음에도 은근슬쩍 넘어가더니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마지못해 설명회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민들은 이에 반발했다. 환보위 측은 "사후 설명회를 갖는다는 것은 사업 강행을 위해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주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회가 아니라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보위 관계자들은 '사후 설명회'는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무시됐다. 여주시 관계자와 산북면장은 지난 23일 다른 동네 이장 등 지역 기관장 12명을 대동하고 '화려하게' 송현리 마을회관에 나타났다. 환보위 측은 "주민 설명회를 한다고 하면서 기관장을 떼거리로 몰고 와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은 무슨 행동이냐"며 강력 항의했다.
이에 대해 유광국 산북면장은 "다른 동네 이장과 기관장을 데려온 이유는 이 문제가 송현리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북면 전체 문제이기 때문에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동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보위 측은 유 면장의 이중적 발언에 비판을 제기했다. 환보위 측은 "몇 주 전에 송현리에 들어서는 레이콘공장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면단위 다른 마을 곳곳에 내 건 적이 있다"며 "당시 면장은 '이 문제는 송현리 문제인데 왜 다른 마을에 플래카드를 내거느냐'며 다른 동네에 걸린 플래카드를 모두 철거했다"고 지적했다.
플래카드를 전부 철거할 때는 '송현리 만의 문제'라고 했다가 주민 설명회 자리에서는 자신의 입장이 불리할 것 같아 '산북면 전체 문제'라며 수십 명의 기관장을 몰고 다니는 면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송전선로와 송전탑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밀양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공사강행 후 주민설득'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국책사업을 하기에 앞서 사업 초기부터 주민들과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공사강행 후 주민설득'이 이어지면서 민자 국책사업 곳곳에서 '제2의 밀양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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