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현장 전문가 4인 서면 좌담회
2만3643명. 지난 5년간 연고 없이 사망한 사람의 숫자다. 이중엔 정말 가족이 없는 게 아니라 관계의 단절, 경제적 이유로 시신 인수를 기피·거부당한 사람도 포함돼 있다. 아시아경제가 2021년 무연고 사망자들에 대한 리포트를 보도한 지 4년이 지난 현재 무연고 사망자는 더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학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법적·제도적 보완과 함께 무연고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뒤에서 국가가 닿지 못하는 영역까지 돌봐준 봉사단체에 대한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서면 좌담회엔 최태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영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이사장, 박경조 장례지원센터장이 참여했다.
'무연고 사망'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최태현= 한국 사회의 오래된 변화가 비로소 가시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하고 있는 경제적 빈곤 문제, 가족 해체 현상과 증가하는 1인 가구와 독거노인, 그리고 이를 포괄하지 못하는 법·제도적 사각지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들어 한국 사회가 비로소 무연고 사망자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규모가 보다 가시화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정순둘=1인 가구의 증가와 같은 가족구조의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약화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의 증가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영호= 경제적 요인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주거 취약계층처럼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분들은 연고 확인이 어렵거나 장례를 가족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연고자가 있어도 채무나 상속 문제, 오랜 기간의 단절 등으로 장례를 주관하기 어려워 법적 연고자는 있으나 장례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 아닌 사람도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하는 '공영장례 지원법'이 2023년 통과됐다. 추가로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정순둘= 우선 가족의 범위를 넘어 지인들까지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입법화된 건 매우 고무적이다. 추가적인 입법보다 지인들이 장례를 원활히 치를 수 있도록 자원이 더 필요해 보인다. 특히 사후 재산이나 부채 등에 대해 장례 진행자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태현= 현행법(장사법)에는 연고자의 범위가 혈연 중심으로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 사실혼 배우자, 친구, 지인 등의 유대 관계가 있어도 법적 권한 부재로 인해 시신을 인수할 수 없어, 결국 해당 시신은 행정상 무연고로 분류된다. 2023년 2월에 통과한 법안은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명시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무연고 사망자가 생전 지정한 사람이나 단체가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고무적인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타법 개정과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 우선 장사법 개정을 통해 비혈연 연고자에게 장례 주관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현행 의료법 제17조가 사망진단서 발급 신청 자격을 친족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실제 장례 절차는 첫 단계부터 막힌다. 지정된 장례 주관자가 무연고 사망자와 비혈연 관계에 있다고 해도 의료법상 제증명 발급 신청권자에 포함되도록 하는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이영호= 장사법 개정 및 시행으로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지자체의 장례 주관 범위가 확대되면서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였던 고인의 장례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다만, 시행 이후 현장에서 제기되는 의견들을 보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면 지자체별로 조례 제정은 이뤄졌지만, 실제 장례를 진행할 빈소나 시설 마련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과 예산 규모나 지원 기준도 지역마다 편차가 커 운영 과정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장례 주관자 확인 절차나 행정·재정 지원 수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으로의 입법이나 제도 개선은 현장의 경험과 의견을 더 폭넓게 수렴하면서 진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박경조= 지방 정부에서 장례 주관자로 지정을 받아야만 하지만, 현실적으로 장례 주관자로 지정받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개인정보법에 묶여 사망진단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화장장 예약조차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사망자 장사 업무 매뉴얼을 법령으로 제정하고, 권고 조항이 아니라 강제 조항으로 규정해야 한다.
최근 무연고 사망 및 공영장례의 현황·제도·인식 측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무엇인가. 그 중 긍정적인 변화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정순둘= 긍정적인 변화는 사회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며, 망자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에 대한 존엄을 지켜주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자체별로 그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
◆최태현=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공영장례 조례의 양적 확대'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그 수가 매우 적었던 공영장례가 이제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공영장례가 없는 나머지 7개의 기초지자체에서도 광역 차원의 상위 조례에 근거하여 이를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사회 구성원의 연고 없는 죽음이 '공적 영역의 책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영호= 무연고 사망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법적 가족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된 점은 실무에서도 큰 전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인 가구 확대와 가족 구조 변화에 맞춘 관계 중심의 장례 방식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유류품 처리처럼 지역마다 다르게 운영되는 영역이 있거나 공영장례 서비스의 품질 격차, 그리고 생전 장례 의사를 표현할 제도가 부족한 점 등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보완되면 제도가 현장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공영장례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여전히 수도권과 지방 간 지원 내용 및 인프라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정순둘= 지자체의 여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강제화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여기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종교재단과 같은 민간단체의 협력을 얻어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박경조= 2020년부터 총 400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공영 장례를 진행했다. 여러 지방 도시를 경험해본 결과 담당 주무관(공무원)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고인의 장례 절차가 달라진다고 느꼈다. 특히 지방 정부에서 공영장례 수행기관 지정에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태현= 결국 앞서 말한 법규의 표준화가 선행되면서, 기초·광역자치단체 간 지원 내용과 인프라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광역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권역별 공영장례 지원 센터를 운영하거나, 인근 지자체 간 화장 시설 및 빈소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재정적 불균등은 중앙정부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영호= 지역마다 인프라와 여건이 달라 지원 방식에 차이가 생기는 부분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물리적인 시설 확충보다는 어디서든 기본적인 존엄과 예우가 확보되는 방향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장례 과정에서 최소의 절차와 예우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지역적 차이가 있더라도 고인의 마지막을 보다 존중하는 방식으로 공영장례가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연고 사망은 단순히 장례 문제가 아니라 고인의 유품 정리 및 유지, 법률적·행정적 관계 정리(채무, 주거 등) 문제로도 이어진다. 죽음 이후의 뒷수습을 공적 영역에서 어디까지 지원해야 할까.
◆최태현= 단순히 시신을 화장하고 봉안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 애도할 수 있는 권리'로까지 확대돼야 한다. 고인이 생전 원했던 장례 방식이 반영될 수 있도록 '사전장례의향서' 제도를 정비하고, 법적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 신속하게 차순위 연고자에게 장례 권한을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금품 처리에 있어 무연고 사망자가 사전에 장례 비용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친구나 지인이 연고자로서 장례를 주관할 수 없어, 고인의 뜻대로 사용되지 못한 채 국고에 환수되는 사례가 있다. 올해 2월부터 사전장례주관자 지정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부산시의 공영장례 서비스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영호= 무연고 사망은 장례 절차뿐 아니라 유품 정리나 법적·행정적 정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공적 영역에서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쉽지 않은 주제다. 모든 상황을 제도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수준까지를 공공이 맡고, 어떤 부분은 지역사회나 주변 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조금 더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지자체·시민사회 등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변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정순둘= 죽음에 대한 준비다. 사후 장례와 유품 정리 등 자신이 미리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견 신탁과 같은 방법도 미리 결정돼 있어야 한다.
◆최태현=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변화 중 하나는 관계 법령의 정합성 확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연고자 범위 확대, 의료법 개정, 장사법 목적 조항 개정, 표준조례안 설계 등 제도적 미비점과 갈등을 해결하고, 지역별로 지나치게 차이가 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박경조= 노인의 통합 돌봄이 생겨나는 등 노년층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지만, 여전히 중년층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이 또한 정부의 정책과 무연고 사망자의 예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연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유형별로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정순둘= 우선 공통으로 사망 이전 외로움과 고립의 문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독사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정기적 안부 확인 등을 실시해야 한다. 연고가 없는 경우 1인 가구 지원센터나 독거노인지원센터와 연결하고, 이웃의 살핌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연고가 있음에도 관계가 단절된 경우 가족관계 개선 등의 지원이 필요하고, 마지막 유형은 장례비 보조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최태현=한국 사회의 공동체적 연결성을 회복해야 한다. 무연고 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소득, 건강, 주거 지역, 범죄 노출 가능성 등에서 주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해 있다. 이들에 대한 개인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사실 이들을 지원하는 적지 않은 시민적 활동단체들이 있다. 이들과 연계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유지를 정부가 지원하는 정치·사회적 과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정비를 통해 가족이 가족을 부담스러워하는 유인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이 부분이 개선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무연고 사망자는 감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청년층의 단절된 삶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정책적 고려도 절실한 상황이다. 매년 100명 안팎의 적지 않은 시민들이 청년의 나이에 무연고 사망에 이르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영호=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주변과의 연결이 끊기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생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형별로 지원 사항을 나누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일상을 둘러싼 관계망을 조금 더 촘촘히 살피는 흐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에서 누구라도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장례를 둘러싼 여러 어려움도 조금은 덜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혼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관심과 연결이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지금 뜨는 뉴스
◆박경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사회적 연결망이 가장 약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가족 해체, 고령화, 고독사 증가는 모두 무연고자 사망자 증가와 직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자체와 정부는 단순한 장례비 지원을 넘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고립 예방, 죽음을 존중하는 문화 조성 등 보다 넓은 차원의 정책적 접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가족 없이 죽는 일'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장사법 등 개정 필요…무연고 사망자 인식도 바꿔야"[2025 무연고사 리포트⑮]](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121809203960705_1766017239.jpg)
!["장사법 등 개정 필요…무연고 사망자 인식도 바꿔야"[2025 무연고사 리포트⑮]](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121809433660845_1766018615.jpg)
!["장사법 등 개정 필요…무연고 사망자 인식도 바꿔야"[2025 무연고사 리포트⑮]](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121809433760846_1766018616.jpg)
!["장사법 등 개정 필요…무연고 사망자 인식도 바꿔야"[2025 무연고사 리포트⑮]](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121809203960704_1766017238.jpg)

